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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Paris

파리의 지명-대전의 트라우마?



파리 지하철 노선도이다.

파리의 지명을 살펴보면 재미있다.

프랑스의 유명인 예컨데 빅토르 위고, 파스퇴르,

클레망소(샹젤리제-클레망소) 등이 지명으로 기념되고 있다.

나폴레옹 최대의 전승인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기념한 Gared' Austerlitz라는 지명도 있다.

프랑스 위인뿐만 아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개선문에 이르는 지하철역명은 죄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국 국가원수의 이름이다.

예컨데

프랭클린D.루즈벨트- 조지 5세(2차대전 당시 영국국왕)-샤를 드골...

이런 식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거리... 미국에도 없을 것 같은 지명이 파리에 있다.

몽마르트 묘지 인근엔 스탈린그라드라는 동네도 있다.

러시아에서조차 스탈린의 이름을 딴 이 도시의

이름을 볼고그라드라고 개칭했지만

프랑스에선 2차대전의 이 빛나는 전승을 - 비록 다른 나라의 승리지만-

당시 이름 그대로 기념하고 있다.

2차대전 독일점령이라는 프랑스 역사 최대의 치욕을

이런 식으로 치유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에펠탑 인근 비르하카임이라는 지명 역시 2차대전에서 유래했다.

지하철 역사에 역명 유래에 대한 안내문도 게시되어 있다.

2차대전 북아프리카 전선...

이탈리아 군에 대한 구원투수로 등장한 독일 북아프리카 군단의

에르빈 롬멜 장군은 독 사령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공격적인

작전을 진행한다.

결국 리비아 영내로 진입했던 영국군을 구축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토부룩을 향해 진격한다.

영국군이 최후의 보루로 구축한 가자라 방어선을

손쉽게 돌파한 독일군은 비르하케임 요새에서

그 유명한 외인부대로 구성된 자유프랑스군과 맞딱뜨리게 된다.

롬멜은 당초 24시간 정도면 작전이 종료되리라 예상했으나

외인부대 병력은 무려 일주일간 저항을 지속했다.

격렬한 저항에 롬멜은 참모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앞의 적군은 누구인가?"

"프랑스군입니다"

"그럴리 없어. 다시 알아봐"

-롬멜은 프랑스 전투 당시 기갑사단장이었고

허를 찔린채 우왕좌왕하는 프랑스군의 무기력한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틀림없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입니다"

"그럼 진작에 외인부대라고 얘길 했어야지..."

외인부대는 2주일간 치열한 저항을 계속했고

영국군 사령부의 후퇴명령이 있고서야

일부 중상자만을 남긴 채 감쪽같이 퇴각했다.

독일은 130여대의 폭격기와 각종 포를 동원하는 화력전을

펼쳤지만 외인부대의 저항을 뚫지는 못했다.

어찌보면 승리라고 하기는 힘든 전투이지만

프랑스군은 이 전투를 패배로 인정치 않으며

에펠탑 인근의 지명으로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