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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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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경찰에 따귀 맞고 월북? 北 눌러앉은 김원봉의 행로 약산 김원봉 [중앙포토] “고전적인 유형의 테러리스트로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거의 말이 없었고 웃는 법이 없었으며,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본 관헌은 그에 관한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그를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에 나오는 약산 김원봉에 대한 묘사입니다. 『아리랑』은 웨일스가 1936년 중국 옌안에서 만난 조선인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산의 구술을 기록한 책입니다. 김산은 김원봉에 대해 “기미년(1919년) 이후 친일파와 일본 관헌,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최대의 공겁의 대상이었고, 나와 같은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에게는 조국 해방의 상징적 존재였다”며 높게 평가했습니다. 김산 [중앙포토] 반면..
중앙일보 연재 [실학별곡] 전편 근대·개혁·진보’가 18세기 실학에 있나 … 봇물 터진 의문 실학별곡 - 신화의 종언 ① 프롤로그 - 실학과 근대 20세기 한국학의 기둥 '실학'에 대한 의문이 이어진다.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성찰적 문제제기다. 한국 학계의 20세기는 ‘실학(實學)의 시대’였다. 실학은 근대화의 학술적 표현이었다. ‘서양 따라잡기’의 또 다른 양식이기도 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지금까지 70여년간, 대한제국기부터 치면 120여년간 우리 민족이 서양을 배우면서 이룩해내려고 애써온 그 목표가 근대화였다. 온 백성의 자유와 평등, 시장화와 산업화는 근대화의 목표들이었다. 1977년 수출 100억불 달성은 근대화의 한 축인 산업화의 성공을 상징했다. 1987년 6월항쟁은 근대화의 또 다른 한 축인 국민의 자유와..
조명되지 않는 한국사 역사상 역대급 패전, 공험진 - 갈라수 전투 [역사] 조명되지 않는 한국사 역사상 역대급 패전, 공험진 - 갈라수 전투 고려시대 중기 무렵, 윤관의 북벌과 고려의 동북 9성 설치는 교과서에서부터 나오는 이야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었다." 라고 하는 일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이 떨어져 거의 알려지지 않는 편이구요. 요즈음에 인터넷에선 "척준경이 여진족과 싸웠다." 는 정도로 알려져 있는것 같더군요. 아무튼 고려군의 총지휘관 윤관이 대군을 이끌고 가 성을 지었다는 '동북 9성' 의 위치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서로 다른 학설을 소개한 저 맨 위의 지도만 봐도 대충 논쟁이 어떻게 되는지는 감이 올듯.... 일단 현재의 정설만 소개하자면 1학설과 3학설 모두 부정되고, 2학설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단..
최초로 삼국지를 본 서양인들,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최초로 삼국지를 본 서양인들,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동아시아 고전 문학 소설로 가장 널리 사랑 받고 알려진 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삼국지연의' 입니다. 지난 역사를 통틀어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이 불후의 명작을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예전에도 가장 인기 있었고,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소설입니다. 국내에서 이문열 삼국지가 2천만부 팔렸으며, 황석영 삼국지가 200만부 정도 팔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두 명만 합쳐도 2300만부인데 무수한 판본을 모조리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팔렸을 겁니다. 일본에서도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가 대히트를 했고, 중국에서야 몇 세기에 걸쳐 수 많은 판본이 팔렸습니다. 말하자면 삼국지연의는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이자, 동아시아 역사를 대표하는 소..
고대의 지도제조방법 지도라는 것은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을 가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근본 목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하죠. 지도는 이런 위치의 확인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물건이고요. 지구는 3차원의 구이지만 지도는 평면입니다. 따라서 가로선 과 세로선 으로 위치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가로선은 위도, 세로선은 경도로 칭해지죠. 고대의 선원이나 학자들도 위도를 측정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북극성이라는 불변의 지표가 있기 때문이죠. 북극성은 북극에서는 머리 꼭대기에 있고 적도에서는 지평선에 있기 때문에 간단한 측량기구를 통해서 거의 정확하게 위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B.C. 500년 무렵의 지도. 지중해는 상당히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문제는 경도입니..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편제 경상감사 김수와 전라감사 이광, 충청감사 윤석각은 각기 성곽을 전면적으로 보수하고 군비를 확충했다. 특히 김수가 두드러졌는데 영천, 청도, 대구, 성주, 부산, 동래, 진주, 안동, 상주와 경상 좌우병영성이 모두 증축되거나 새로 쌓았다. 단순한 왜구의 노략질 정도로 보지도 않았다. 기존 왜구는 대마도를 거점으로 섬이 많은 경상 우도와 전라도 지역을 침탈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만약 왜구의 침탈 정도로 생각했다면 경상 우도와 전라도 지역을 집중적으로 강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정은 왜구의 주 공격루트가 아니었던 경상 좌도 방어에도 심혈을 기울여 2개의 첨사진만 있던 부산-동래 방면에 1개 만호진을 통합시키고 6개 만호진을 이전시켰다. 김수는 축성 인원 확보를 위해 백성들 뿐 아니라 유생들까지 동원했다. 향..
임진왜란- 명군의 참전과 역할 명나라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이유에 관해서는 명백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다. 그런고로 여러가지 잡스런 야사들이 많지만 이 전쟁의 목적이나 전략적인 시각에서 보나 참전할 필요성은 명백했다. 우선 상술한 내용을 보면 알다시피, 당장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킨 궁극적인 목적은 명나라를 정복하여 중국 대륙에 진출하는 것이었지 조선을 정복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본래 조선에 통보한 요구사항도 '조선으로 하여금 일본에 복속할 것과 명나라를 치는데 앞잡이가 될 것' 이었고, 이런 불손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가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 대마도주가 온건하게 돌려 말한답시고 바꾼 것도 '명을 치러 가는데 조선은 명으로 침공할 길을 빌려달라'는 내용이었으므로 어느 쪽이든 일본이 명나라를 침공하겠다는 의사는 분명..
[프레시안]제국주의의 파편, 펀자브 붉은 강 파키스탄의 라호르는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국경을 넘었다는 실감이 덜했다. 겨우 한 시간 남짓 걸렸을 뿐이다. 시차는 고작 30분이었다. 하지만 거리는 가깝되, 거리감은 적지 않았다. 일주일에 단지 두 번의 항공편만 있을 뿐이다. 연결망이 뜸한 것이다. 그런데도 방금 비행기를 타고 떠나왔던 델리와 몹시 흡사했다. 무굴제국과 대영제국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 외양부터 비슷했다. 시장 풍경도 어딘가 친숙했다. 거리에서 파는 음식부터 흘러나오는 노래까지 내가 석 달을 살았던 마유르 비하르의 뒷골목을 연상시켰다. 인도의 델리는 남인도의 첸나이와 서인도의 뭄바이보다 라호르와 훨씬 더 닮았다. 북인도 내륙부의 생활 세계를 공유했던 이웃 도시였기 때문이다. 본디 델리와 라호르는 펀자브를 대표하는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