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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지역소식

광주 초등 교사들 `배구 권력’

광주 초등 교사들 `배구 권력’
배구가 승진 줄서기 도구 `배구 라인’까지 등장
광적인 배구문화, 교사들 “싫어도 억지로 참여”
정상철 dreams@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3-09-27 06:00:00
 

 

▲ 광주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의 광적인 배구문화가 배구 권력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사진은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일과시간에 이웃학교 우르르 몰려가 배구연습도

 도를 넘어선 초등학교 배구문화가 논란이다. 배구만 잘 하면 ‘위너’가 되고, 배구를 못 하면 학교 안에서 ‘루저’ 취급을 받는다.

 특히 배구를 하기 싫은 교사도 학교장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배구활동에 참여하는 실정이며 배구가 친목 도모의 수준을 넘어 승진을 위한 ‘줄서기’의 도구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배구를 잘 하는 교사를 ‘초빙교사제’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학교로 끌어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배구 라인’이란 말까지 등장해 초등 교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있다.

 또 배구대회가 있는 때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학교 일과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교사들이 단체로 출장을 끊고 이웃학교로 배구 연습시합을 나서는 게 광주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관례가 되다시피 했다. 배구대회가 수없이 많기 때문에 교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학교를 비우는 사례가 많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오직 배구를 위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축소 운영해 학생들에게 직접적 피해가 돌아가기도 한다.

 광주지역 초등학교에서 배구는 ‘유일무이’한 운동이다.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일상처럼 하는 운동이며 교장이나 교감이 배구를 좋아하는 학교는 거의 광적으로 배구에 매달린다. 한 교사는 광주 초등학교 배구문화를 “군대축구랑 똑같다”는 말로 정의한다. 교사와 교육청 직원들로 구성된 배구 동아리가 10개나 존재하고, 별도로 초등학교 자체적으로 배구를 진행한다.

 특히 ‘4개교회’라는 독특한 배구 모임이 존재한다. 인근에 있는 4개 초등학교가 하나의 리그로 묶이고 각 학교가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총 4회 배구대회를 연다. 배구를 싫어하는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배구장에 끌려 다닌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무리 하기 싫어도 교장·교감이 무서워서 끌려 나갈 수밖에 없다”며 “배구를 잘 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지만 교장들이 못 하는 교사에게는 대놓고 쌍욕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오직하면 ‘배구 못하면 루저다’는 말이 생겼겠나?”라고 말했다.

 문제는 배구가 승진을 위한 ‘줄서기’의 도구로까지 작용한다는 것. 배구클럽들이 대부분 출신 대학 교사들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여 있기 때문에 밀어주고 끌어주는 현상이 뚜렷하다. 배구 클럽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교장이나 장학사들이 회원들에게 힘을 실어줘 ‘교과연구회’ 강사를 시켜주고, 장학지도 책자를 발간할 때 주무자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 승진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연구학교에 보내주기도 한다. 심지어 ‘초빙교사제’를 악용해 배구 잘하는 회원을 자신이 교장을 맡고 있는 학교로 데려오는 경우도 흔하다.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배구라인만 잘 타고 다녀도 승진 점수를 얻기가 수월해 배구에 목매는 교사들이 수없이 많다”며 “배구를 위해 모이는 학교도 있고, 교장이 ‘너는 배구 잘 하니까 우리 학교로 와’, 하는 식인데, 이 경우 ‘초빙교사제’를 악용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의 광적인 배구문화는 학생들의 피해로까지 이어진다. 생활체육협회 등이 주최하는 규모가 큰 배구대회가 열릴 때면 배구연습을 위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단축 운영하고, 심지어 수업을 단축 운영하는 학교도 있다.

 광주의 한 교사가 작성한 `초등학교 교사 조직문화의 현상학적 탐색’이란 논문을 보면 배구와 관련한 한 초등학교 특수교사의 인터뷰가 나온다. “내가 4년을 학교에 근무하면서 몇 번을 들었는데, 다른 학교에서 배구하니까 오늘은 빨리 먹고 빨리 보냅니다. 그런 날 학부모가 왔는데 아이는 일찍 끝나서 운동장에 있는 거야. 학부모들이 나한테 불평해. 선생님들 배구하러 간다고 일찍 끝낸다고, 또 그걸 방송으로 공식적으로 쉬는 시간 단축한다고 말을 해. 밖에서 볼 땐 말이 안 되죠.”

 장휘국 교육감 체제부터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규모가 큰 배구대회가 있는 때 교사들이 단체로 다른 학교로 원정 연습시합을 나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이 경우 학교 일과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교사들이 단체로 출장을 끊는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수업은 끝냈더라도 초등학교 일과시간은 4시인데 교사들이 2시50분에 우르르 다른 학교로 몰려가서 3시30분부터 배구연습시합을 시작한다”며 “학교를 떠나는 사유는 전부 `출장’인데, 큰 시합 있을 때면 일주일에 두세 번을 이러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배구권력, 시교육청이 끊어라
“최고 권위 `시교육감배’대회 폐지” 목소리
정상철 dreams@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3-09-27 06:00:00
 
 광적인 초등학교 배구문화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초등교사들 사이에서 ‘광주광역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광주에서는 생활체육협회 등이 진행하는 큰 규모의 배구대회가 1년에 7∼8회 열리지만 초등학교 교직사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가 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이기 때문.

 특히 이 대회가 열리기 직전 학교 일과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교사들이 단체로 출장을 끊고 이웃학교로 배구 연습시합을 나가는 사례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 교직원들만 참여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일선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평가받는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배구를 좋아하는 교장이나 교감들은 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을 최고 영예로 생각한다”며 “그 대회를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연습을 하는 초등학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회에 참여하는 초등학교도 다른 대회보다 월등히 많다. 다른 대회에는 10여 개의 초등학교팀이 참여하는 정도지만 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에는 광주 전체 초등학교의 40% 정도가 참여한다. 실제로 지난 5월4일 열린 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에는 무려 1300여 명의 선수가 참여했으며 초등부만 46개팀이 참여했다. 또 여자교직원부 18개팀도 대부분 초등학교 교사들로 구성됐다. 반면 중등부는 10개팀 참가에 불과했다.

 배구를 싫어하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내가 알기로 교육청도 광주지역 초등학교들의 광적인 배구문화와 그에 따른 폐단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솔직히 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가 잘못된 초등 배구문화를 부추기는 느낌이다. 배구 때문에 고통받는 교사들을 생각한다면 시교육청이 나서서 배구대회를 개최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는 전임 안순일 교육감 시절 만들어졌다. 배구를 좋아하는 교직원들의 건의에 의한 것이었는데, 안순일 교육감이 광주지역 최초의 초등 출신 교육감인 것과 관련이 깊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 배구문화로 인한 폐단은 알고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고, 무엇보다 교직원들의 건의에 의해 만들어진 시교육감배 교직원배구대회 폐지는 단순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다”며 “솔직히 시교육청의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하고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들 배구권력 실태와 배경
같은 대학 출신, 단합 강조하고 위계 `뚜렷’
“초등 조직문화에 딱 들어맞는 게 배구”
정상철 dreams@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3-09-27 06:00:00
 

 

▲ 지난 5월 열렸던 시교육감배 배구대회 개회식 모습.

 왜 유독 중·고등학교와 달리 초등학교만 배구에 목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초등학교의 이상한 ‘조직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초등학교는 출신 대학이 서로 다른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부분 광주교대 출신들로 묶여 있어 단합이 강조되고, 서로 간의 위계 문화가 매우 뚜렷하다는 것. 특히 어느 한 가지에 획일적으로 매달리는 특성이 짙고 매우 폐쇄적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광주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전부 선후배로 엮여있기 때문에 위계와 단합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배구는 체력부담이 적어 나이 들어도 할 수 있고, 여러 사람이 게임에 참여하며, 남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에 광주 초등학교 조직문화에 딱 들어맞는 운동이다”고 말했다.

 특히 교장이나 교감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결정하면 일반 교사로서는 거부하기 힘들다. 배구도 다르지 않아서 이미 광적인 배구문화가 광주의 전체 초등학교에 퍼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배구를 싫어하는 교사라도 배구장에 끌려 나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교사 조직문화의 현상학적 탐색’ 논문을 보면 광주지역 초등학교의 위계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한 초등학교 행정직 직원은 “교장의 파워가 굉장히 센 것 같아요. 우선은 선생님들이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잘 따르는 것 같아요. 솔직히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교장선생님이 밖으로 나올 때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는 것도 봤어요. 마치 군대에서 대대장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요”라고 증언한다.

 배구는 특히 경쟁적인 초등학교 승진문화를 대변한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자기 과목만 가르치기 때문에 교사들이 과목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해 승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초등학교는 같은 대학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배우고 교사가 됐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명확해 승진에 민감하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솔직히 친구가 교감이나 장학사로 승진을 하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고, 그 순간부터 승진점수를 얻는 데 사활을 걸게 된다”며 “승진에 민감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배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배구라인’만 잘 타도 남들보다 승진 점수 얻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교장이나 교감 등 관리자들의 입장에서도 배구를 통한 인맥 다지기는 매우 훌륭한 안전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비리 등에 엮여 징계를 받았을 경우 징계를 낮추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배구 인맥이 활용되기도 한다. 징계를 낮추기 위해 동료 교사들에게 탄원서를 받아내기가 매우 수월해지는 것.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에서 배구는 모든 운동을 다 쓸어버리는 유일한 운동이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배구를 하고 있고 배구처럼 인맥 쌓기에 용이한 것도 없다”며 “나 같은 경우 배구를 무척 잘 하지만 배구로 라인을 맺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또 잘못도 감싸주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껴 지금은 배구를 멀리 한다”고 말했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