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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신드롬 헛꿈일까 대박일까

비트코인 신드롬 헛꿈일까 대박일까

그야말로 광풍이다. 비트코인(Bitcoin), 이더리움(Ethereum) 등 온라인 가상화폐 얘기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부 네티즌이나 IT 종사자들이 마치 장난처럼 거래했던 비트코인은 이제 삼성전자 주식보다 더 비싸졌다. 지난 5월 초 150만원대에 불과했던 가격은 한 달 새 460만원까지 폭등했다.비트코인 후발주자인 이더리움은 올해 1월 1만원으로 출발했으나 지금 30배로 불어난 30만원에 거래된다. 가상화폐 신드롬이 마치 17세기 네덜란드 경제를 위기로 몰아간 ‘튤립 투기’를 연상시킨다는 우려가 있다. 반면 화폐 기능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은 금을 대신할 새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대단하다.



‘제도권 편입+안전자산 인식’에 급등

비트코인 올 초 대비 3배 올라…연내 1000만원 돌파 주장도

지난 5월 25일, 아침 일찍부터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낯선 단어들이 상위권에 떴다.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가상화폐로 알려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200만원대에 불과했던 비트코인 값이 460만원까지 뛰었기 때문이다. 11만원대였던 이더리움은 35만원으로 더 드라마틱하게 폭등했다. 오후 들어 두 가상화폐 가격은 각각 280만원, 21만원으로 하락하며 전형적인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였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젊은 ‘코인 폐인’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가상화폐 거래는 주식시장의 상·하한가, 사이드카 같은 충격 완화 장치가 없고 365일 24시간 거래된다. 때문에 밤새 시세판을 들여다보며 ‘단타(초단기 투자)’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하룻밤의 꿈’ 같은 급등락이나 ‘코인 폐인’의 출현은 최근 불고 있는 가상화폐 광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금융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6월 7일 기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은 330만원, 30만원대로 올 초 대비 크게 오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연내 1000만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장밋빛 견해까지 나온다.

 


가상화폐 몸값 상승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6월 7일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2732달러였다. 올해 1월 1일 거래 가격은 974달러로 5개월 만에 2.9배가 올랐다. 지난달 초 150달러 선에서 거래됐는데 한 달 새 1200달러 넘게 폭등했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주식인 삼성전자(226만5000원)보다 훨씬 비싸다. 금값(온스당 1290달러, 6월 7일 기준)도 우스울 정도다.

실체도 없는 가상화폐가 급등세를 탄 이유가 뭘까. 신종 화폐나 안전자산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아니면 투기 광풍이 불러온 신기루 같은 허상일까.

가상화폐는 700종이 넘는다. 이 중 주목받는 화폐는 시장점유율 80%가 넘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다.

비트코인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가상화폐다. 일본인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호주 사업가 겸 컴퓨터 공학자가 개발했다.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채굴(mining)’하거나 거래소에서 ‘구입’하는 것.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면 채굴할 수 있다. 출범 초기만 해도 개인 채굴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져 수십 대의 슈퍼컴퓨터를 돌려야만 한다. 비용 대비 수익을 따졌을 때 개인이 채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반인은 개인 간 거래나 사설 거래소를 통해 돈을 주고 산다. 국내에만 ‘빗썸’ ‘코인원’ ‘코빗’ 등 10여개의 비트코인 거래소가 있다.

▶일본이 제도권 편입하며 힘 받아…중국서 안전자산 수요 증가

국내서는 제도화 논의 지지부진…가이드라인 제정 서둘러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이유는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수요가 몰려서다. 특히 일본이 법개정을 통해 7월부터 비트코인을 공식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하자 찾는 이가 크게 늘어났다. 일본은 올해 안에 26만개 점포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하게 만든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가격 급등을 설명하기 힘들다. 화폐로서 기능을 하려면 가격이 매우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은 너무 들쑥날쑥하다. 더욱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면 화폐 발행에 따른 수익을 중앙은행이 아닌 개인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폐로서의 성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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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안전자산 역할에 주목한다. 비트코인 가치는 중앙은행 통화정책 영향을 받지 않는다. 중국에서 위안화 약세가 이어지는 동안 비트코인이 대체투자로 인기를 끌었던 점은 이런 점을 말해준다. 중국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부유층을 중심으로 비트코인 수요가 폭증했다. 중국 정부가 부유층의 해외 자금 유출을 엄격히 제한하는데 정부 당국의 규제를 피해 해외로 자금을 반출하는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위안화 하락에 대한 헤지용으로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정치적 위기설이 나올 때마다 비트코인 값이 뛰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한 비트코인 투자가는 “비트코인 성공 여부는 일상생활에서 사용 가능한지 여부와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일본이 제도화에 나서고 중국인이 위안화를 대체할 자산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한국인 투기 수요가 맞물려 폭등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실제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 중 한·중·일 3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릴 요인은 또 있다. 비트코인은 2145년까지 2100만개까지만 발행한다. 이미 1600만개가 채굴됐는데 갈수록 채굴이 어렵도록 고안됐다. 채굴 비용이 더 늘어나는 만큼 이미 채굴돼 거래 중인 비트코인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총량이 제한적이고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제2의 금’이 될 자격을 어느 정도 갖췄다는 평가다.

비트코인이 가상화폐 시장 45%를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이더리움이 25%대로 바짝 뒤쫓는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캐나다인 비탈리크 부테린이 2014년 개발한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처럼 컴퓨터 암호를 풀어 채굴한다. 한번 해킹 사고가 터진 후 ‘이더리움 클래식’이라는 차기 버전이 나왔다. 선두주자인 비트코인이 급상승하자 이처럼 오를 것으로 예상한 투기 수요가 이더리움 폭등을 낳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외에서는 비트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일본이 지난 4월 비트코인을 통화로 인정한 데 이어 미국 버몬트주는 지난 5월 송금법에 가상통화를 교환의 매개, 계정의 단위, 가치 저장이 가능한 수단으로 정의하는 내용을 담았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금융상품도 곧 만날 듯 보인다. 애비게일 존슨 미국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는 지난 5월 뉴욕에서 열린 코인데스크 주최 콘퍼런스에서 “투자자들이 조만간 피델리티에서도 비트코인 자산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형 금융기관 수장이 비트코인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건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이 같은 글로벌 추세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비트코인에 관한 제도화는 늦은 편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가상통화 제도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비트코인 본질과 법적 근거, 제도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딱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격 전망은 엇갈린다.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한 달에 가치가 10배씩 증가하는 것은 전형적인 거품 징후다. 이는 어느 누구도 이런 가상화폐가 얼마나 가치가 있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비트코인 가상화폐의 가치는 2000달러 수준이나, 일부 전문가들은 1만달러 또는 그 이상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덴마크 삭소뱅크의 케이 반-피터슨 애널리스트는 “최근 10년 안에 가상화폐 거래가 전체 외환 거래의 10%를 차지하고 가격은 개당 1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올해 비트코인 가격이 2000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불안감은 여전히 남았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광풍을 17세기 네덜란드 튤립과 비교하곤 한다. 당시 네덜란드는 터키를 통해 튤립을 들여왔다. 귀족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자 투기 열풍이 불었다. 한 달 새 50배나 가격이 폭등하며 집 한 채 값에 육박했다가 순식간에 거품이 꺼졌다.

비트코인은 발행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글로벌 금융사나 IT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제도권 내 새로운 가상화폐를 발행한다면 비트코인은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 비트코인 자체가 해킹되지 않더라도 거래소 보안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가상화폐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는 점 역시 편치 않다.
 
전 세계 700여종의 가상화폐 중 어느 것이 살아남을지 알 수 없다. 차명훈 코인원 대표는 “비트코인 등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표적인 화폐를 제외하면 신규 화폐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대훈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로 인정받거나 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 발돋움할지, 각국 정부가 외면하며 사라질지 알 수 없다”면서도 “단 비트코인이 단순한 송금 수단을 넘어 결제 수단으로도 점점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강준영 산업은행 미래전략개발부 연구원은 ‘비트코인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이 그동안 디지털 상품으로 취급돼왔으나 향후 결제·송금 수단인 통화로서의 이용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상품과 통화라는 이중적 성격을 보이는 만큼 공공성 확보와 신산업 육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 = 명순영(팀장)·박수호·류지민·나건웅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12호 (2017.06.14~06.2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