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중항쟁 기념일을 한 달 여 앞두고, 광주는 또다시 분노로 들끓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사수하기 위해 광주 지역사회 전체가 들고 일어섰다. 오월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광주’가 박근혜 정부에게 제시한 기한은 4월까지다.
지난해 5·18민중항쟁 33주년 기념식은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거부하면서 ‘반쪽’으로 치러졌다. 이후 정계, 시민사회 등 광주의 각계각층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공식기념곡 지정을 박근혜 정부에 요구해 왔다.
이러한 광주의 요구에 국회는 지난해 6월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공식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여·야 국회의원 158명이 결의안 통과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5·18기념재단은 성명을 내고 “국가보훈처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기념곡으로 지정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공식기념곡 지정을 더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결의안 통과 후 7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했기 때문에 기념곡 지정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답했지만, 이는 말 뿐이었다.
같은 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돌연 기념곡 지정 시점을 ‘2014년 5·18전까지’로 유보했다. “많은 논란이 있어 기념곡 지정을 못하다가 결의안이 통과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견돼 지금 고민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국론 분열”이라는 해괴한 논리
이러한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론 분열’을 내세우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에 대한 공식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정 총리는 8일 국회에서 “국회 결의안 통과를 존중 하지만, 국민의 또 다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며 “워낙 강한 반대여론이 있어 잘못하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고 밝혔다.
보수단체까지 박근혜 정부를 지원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 등 69개 보수단체들은 지난 9일 중앙 일간지에 ‘임을 위한 행진곡, 그들의 임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광고를 냈다. 이들 단체들은 광고를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은 특정단체들이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라며 “원곡은 북한에서 제작한 5·18 모략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 음악이고, 작사자는 국보법 위반으로 복역한 월북, 반체제 인사”라며 색깔론 공세를 폈다.
5·18을 한 달 여 앞두고, 박근혜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거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이에 광주 지역사회 전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을 위해 들고 일어섰다.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소속 6·4지방선거 출마자들은 10일 국가보훈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참으로 황당하고 분노스럽다”며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일방적인 의견수렴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끈 다음 `국론 분열’을 주장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는 5·18민중항쟁의 역사를 되돌리고, 항쟁의 정신을 거세하려는 정략적인 시도”라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종북몰이에 말 바꾸기까지 하고 있는 박승춘 보훈처장은 당장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지 않는다면, 이 곡은 정부에 의해 퇴출될 상황에 놓여 있다”며 “1인 시위를 시작으로 전국 후보자 공동선언 및 5월노래 제창대회, 철야농성, 국무총리 및 보훈처장 항의방문 등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4월 답없으면? 모든 가능성 열려있어”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 후보자인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광주민중항쟁 기념곡 지정에 대한 정부의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며 “기념곡 지정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새누리당, 정의당 등 호남지역 모든 정당이 연대해 공동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을 위해 광주의 역량을 모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일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5·18기념재단 등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통곡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홍원 총리는 지난 33주년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었던 모습을 부정하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 결의안까지 무시하며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에 “4월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라”고 압박했다. 4월까지 답을 주지 않을 경우 기념식 보이콧 등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송선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기념식 불참 등 극단적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아직 4월 말이 안 됐기 때문에 그 이후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4월 이후) 행동은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오월단체, 강기정·박혜자 국회의원 등과 함께 오는 18일 오전 11시 국회의장을 만나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을 위한 국회차원의 노력을 요구할 예정이다.
송 이사는 “정 총리의 이번 발언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첫 공식 답변으로, 결국 현 정부의 역사인식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앞으로 공개·비공개적 모든 방식을 총 동원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기념곡 지정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