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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London

학살자의 동상

세인트 폴에서 템즈강 방면으로 걷다가 본 것들....

 

처음엔 또 무슨 대성당을 만난 줄 알았다.


 

알고보니 법원...  

 

 

 

최고재판소 인근에 동상이 몇 개 있다.

이건 자유당 당수로서4차례나 수상을 역임하며

영국 양당제 정착에 크게 기여한 글래드스턴의 동상.

아일랜드 등 식민지에 대한 자치권 부여를 주장했고

여성,노동자들의 권익신장에도 이바지했다.

대영제국이 유지되기 위해선

유연한 식민지 정책이 필수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편전쟁의 개전에도 반대했던 인물이다.

개전을 결정하는 의회투표를 앞두고 그가 했던 반대연설을 간추려본다.

"중국 청나라에게는 아편을 금지시킬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영국의 외무장관은 청나라의 정당한 권리마저 짓밟으며

이 부정한 무역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정하고 치욕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전쟁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

지금은 저 추악한 아편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승리와 그 이득인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영국의 국왕과 대영제국이 입을

명예, 위신, 존엄성의 손실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국기는 더럽혀졌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깃발을 끌어내리고

우리의 배를 불태울 때, 우리는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영제국의 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아도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도 없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감격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Parliament square에 그 동상이 우뚝 서 있는

파머스톤 당시 수상은

"아편은 술보다 해독이 덜하다"는 괴변을 펼치며

파병동의를 구했고

그때까지도 살아있던 웰링턴 공작은

"50년의 공직생활 중 유니언 잭이 광동에서 당한 것 같은

모욕을 본 적이 없다" 며 개전론을 펼쳤다.

파병안은 겨우 9표차이로 의회를 통과했다.

참고로 아편전쟁은 중국 근세사와 최근세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글래드스턴 동상 옆에 뜻밖의 동상이 있다.

동상 건립당시 논란이 됐다는

2차대전 당시의 영 공군 사령관인 아더 해리스의 동상이다.

해리스 뒤의 건물이

2차대전 당시 독일측 공습으로 파괴된 공군 교회라고 한다.

 

"March divided, Fight Unifyed(분군행군 총군전투)"

헬무트 폰 몰트케의 전쟁금언이다.

그렇다면 우리 해리스 아저씨의 전쟁금언은?

"최단시간에 최대의 폭격기를 동원해

단시간만에 최대면적을 쓸어버린다"

단순하지만, 당시 폭격기의 성능에 기초한

가장 현명한 전략폭격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무자비하기도 하고...

예컨데 함부르크 공습 땐 당시 영국이 보유하고 있던 폭격기

1000대 전부를 출격시키는 모험을 감행해 대성공을 거뒀다.

알루미늄 조각(WINDOW라고 불렀단다)을 뿌려대며

독일 공군의 레이더를 교란한 후

1000대의 항공기가 일시에 함부르크 상공에 집결,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고

5만여명의 시민을 말살했다.

반면 슈투카 따위로 기총소사나 해대는 수준의 전술폭격으로

적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히틀러나 괴링의 판단착오는 괴멸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먼저 런던 공습을 감행했지만

현대적인 전략폭격에 무지했던 독 공군수뇌부 덕분에

영국에는 소소한 피해만 입혔을 뿐아니라

역으로 무자비한 보복에 직면하게 된다.

해리스가 아무리 많은 독일민간인을 죽여도

확실한 변명거리가 생기게 된 샘이다.

암튼 아더 해리스...이 양반의 주요 전적으로 보면

쾰른- 6만/ 함부르크 -5만/ 드레스단-약 10만 추산

대표적인 것만 추린 거다.


 


독일은 숱한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영국입장에서도 자국이 선제 공습을 당했으니

당연한 보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대전 말기의 드레스덴 공습은 숱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공습당일인1945년 2월 14일 정도엔

독일 저항능력이 거의 상실된 상태였고

이 도시는 동부국경에서 소련군을 피해

들어온 피난민들만 득실거리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해리스는 무차별 공습명령을 내려

10만명 이상

- 시체의 훼손이 심해 정확한 신원파악이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

목숨을학살한 셈이다.

당연하게도 희생자 중 군인은 거의 없었다.

1945년 2월 정도면 독일군 자체가 거의 와해 상태였으리라...

실제해리스 동상건립 소식을 들은

독일인들은

"히틀러도 한 시간에 10만명을 죽이진 못했다"

울부짖었다고 한다.

P.S.1. 올해 2월 14일드레스덴 시는

드레스덴 공습을 추모해"드레스덴 상"이란 걸최초로 제정했단다.

폭력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상이라는데

첫 수상자는 유명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고른 것 같은식상한 인물이긴 하지만

2차대전 최대 희생국인

러시아 출신이란데서 역사의 화해라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P.S.2 해리스는 90살 넘게 장수했단다....

독일인들에게 욕 먹어서그랬을까?

P.S 3.독일 역시 중대형 폭격기

'우랄-우랄산맥넘어까지 폭격가능하다는 의미'을

개발하려 했으나

1930년대에 산업능력 밖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다.

독일은 역사상 최초로 전략폭격을 선보였지만

뒤떨어진 항공전력 운용으로 파국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대전내내 삽질을 자랑했던 괴링아저씨..

뱃살의 포스가 장난 아니시다.


놀랍게도 1차대전 당시의 전투기 에이스였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의 후계자로서

그가 죽자 대신 대대를 지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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