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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지역소식

일찍 온 추위…쪽방촌 르포

“내가 세상 뜨면 손자들은 어떡하나”
■일찍 온 추위…쪽방촌 르포

70대 할머니 폐지·고물 수집으로 손자 둘 키워
“사위 수입 발생” 정부 보조금 17만원 줄어 ‘막막’
비닐로 창문 씌운 것이 겨울나기 난방 대책의 전부


입력날짜 : 2013. 11.26. 00:00

 

할머니 건강하세요
때이른 강추위가 찾아온 지난 21일 광주시 동구 학동 조모 할머니(오른쪽) 댁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해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있다.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강추위가 찾아와 서민들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다. 아침 최저기온이 4-5도까지 떨어진 지난 21일 광주시 동구 학동의 한 할머니 집.

2명의 손자를 키우고 있는 조모(75)할머니 집안은 유독 냉기가 가득하다. 연료비가 없어 난방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창문을 비닐로 씌운 것이 난방의 전부다. 그야말로 임시방편이다.

방안에 들어서자, 초면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으며 반갑게 맞이한 할머니는 “뭐 먹을 게 없는데, 손님 대접을 제대로 못해서 어찌 하느냐”며 미안해했다.

조 할머니는 조그마한 쪽방에서 두 명의 손자를 키우며 사는 독거노인이다. 할머니에게 손자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자마자 연신 눈물을 흘리며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조 할머니는 “내가 딸 여섯, 아들이 하나로 일곱 명의 자식이 있는데, 다들 힘든 형편 때문에 왕래가 줄어든 지 오래됐다. 지금은 새벽에 폐지를 주워 아들 손자 두 명을 키우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들 손자를 맡게 된 사연을 묻는 질문에 “말하기가 싫다”고 잠시 흐느끼며 슬픔에 잠기더니 “남편이 죽기 전에는 우리 집안도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고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현재 얹혀사는 이 집이 사실 우리 집이었는데, 남편이 죽자 급속도로 가세가 기울었고, 어떻게 하다보니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반대로 세 들어 산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손자 두 명을 키운 사연을 접한 집 주인이 할머니에게 임대료 없이 무상으로 사용하게 한 것이다. 조 할머니는 “집주인은 현재 전남의 한 지자체 군수로 알고 있다. 이 고마운 양반이 내 딱한 사연을 듣고 돈을 받지 않고 살게 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할머니는 밤 11시부터 새벽 내내 혹독하게 추운 도심 속을 리어카를 끌고 폐지 등 고물을 주어 생활비를 번다. 폐지를 팔아 큰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손자를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인지라 쉴 생각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다.

설상가상으로 작년부터는 사위가 돈을 번다고 해서 정부 보조금 지원이 17만원이나 줄었다고 한다. 조 할머니는 “두명의 손자를 키우며 이 나이에 돈벌이가 없는 노인에게는 청천벽력과 다름없는 일이다”며 “내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 손자는 누가 키우냐”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조 할머니는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의 사랑이 있기에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할머니는 “새벽에 폐지를 줍는 모습을 우연히 남광주파출소 직원들이 보고 ‘할머니 파출소 안에 들어와서 몸을 녹이세요’라고 말하며 커피, 율무차를 제공받고 감동받아 아직 인정이 있는 세상임을 느꼈다”고 감사해 했다.

“손자가 태권도를 잘한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던 할머니는 자신의 숙명인 손자 양육을 위해 오늘도 새벽 도심을 헤치며 폐지 줍기에 나선다. /임채만 기자 icm@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