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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九州

가라쓰 기행12-가라쓰 성(唐津城)에 오르다.

 

 

 

 

 

 

 

가라쓰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가라쓰 성.

 

데라자와 히로다카(寺澤廣高)가 가라쓰 번 초대번주로 입봉하면서 건설했다. 히젠 나고야성이 폐성된 후

그 석재를 재활용해 건설했다고 한다. 데라자와 자신이 히젠 나고야성 건설당시 봉행으로 참여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 메이지유신 이후 폐성되고 성터는 마이즈루(舞鶴) 공원으로 정비되었다가 1966년에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다. 방문당시에도 뭔가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럴싸한 천수각도 결국 콘크리트 건물이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미니어처로 가라쓰 성과 조카마치(城下町)를 재현했다. 천수각 건물 전체가 박물관 역할을 한다. 

 

 

 

초대 가라쓰 번주였던 데라자와 가문은 묘하게 가라쓰와 멀리 떨어져있는 구마모토의 아마쿠사(天草)를 소령으로 받고 있었다. 고쿠다카(石高)는 도합 12만 3천석. 문제는 2대 데라자와 가타타카의 대에 이르러 저 유명한 시마바라의 난-일본 역사상 최대규모의 기독교도 반란 사건, 문제의 아마쿠사는 크리스천 다이묘였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지였다-이 터지고 막부는 이에대한 책임을 물어 아마쿠사 영지몰수를 단행한다. 더 큰 문책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번주 가타타카가 자살함으로써 데라자와 가문이 단절된다.

 

이후 막부 250여년동안 오쿠보,오규 마쓰다이라,미즈노,오가사와라 등 5가문이 가라쓰 번을 통치했다. 나름모두 도쿠가와 후다이(譜代) 다이묘들이다.   

 

마지막으로 입봉한 오가사와라 가의 초대번주 오가사와라 나가마사(小笠原長昌)가 가라쓰 도기에 운학무늬를 넣을 것을 최초로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과연 대포의 포신은 어느쪽을 향하고 있었을까. 큐슈가 온통 도자마 다이묘 천지였으니 후쿠오카나 구마모토 방향으로 조준되고 있었으리라...

 

 

 

뎃포에 권총까지 보인다.  

 

 닛뽄도가 빠지면 섭하다.

 

 

 

 

 

 

 

 

 

 천수각 꼭대기 쪽에 전망대가 있어 가라쓰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가라쓰의 자랑인 송림 니시노 마츠바라 방면으로 보면 완전히 한반도 지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