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장애인의 사연을 전합니다. 여성 장애인의 성폭력은 비장애인 여성의 성폭력 사건보다 훨씬 더 풀어나가기 어렵습니다. 이중 차별에 노출돼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조치인 가해자·피해자간 분리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함에도 법과 제도는 성폭력 피해 여성장애인에 대한 구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가해자로부터 떨어져 생활할 수 있는 주거지 마련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주>
2014년 2월26일, 서울 송파구에서는 생활고를 못이긴 세모녀가 동반 자살하였고, 지난 3월13일에는 광주 북구에서 아들의 발달장애 판정으로 충격을 받은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정부는 물론 광주광역시에서는 부랴부랴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한다, 위기가정 해소를 위한 ‘생명구제 종합대책’을 마련한다, 광주형 생활보장제도를 실시한다, 등등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전 국민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억울한 죽음들을 애도하고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규탄하던 그 때, 정부와 지자체가 위기가정을 찾아내 자살을 막고 국민의 생명을 구제하겠다며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던 그 때, 10평 크기 원룸에 구명조끼도 없이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한 가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폭행 신고 뒤 “밀린 월세 내라”
지난 5월15일, 장애인인권센터로 걸려온 전화 너머 가늘게 떨고 있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억울함,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동생이 성폭력을 당했어요. 사는 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갈 수도 없고, 날마다 가해자의 얼굴을 맞닥뜨려야하는 동생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네요. 그곳이 이런 사람 도와주는 곳이 맞나요?ⓒ“
성폭력을 당했다는 그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45세, 정신장애 3급인 그녀는 19살에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정신질환으로 26년을 고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수없이 반복하는 어려운 처지였지만, 그녀는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현재 10평 크기에,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는 28만 원인 원룸에서 남편이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해 번 수입으로 생활하며, 20대 중반의 아들과 네 살배기 손녀랑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 집에서도, 그 아저씨 집에서도, 비어있는 옆방에서도 그 짓을 했어요. 나는 정신과 약을 먹으면 온몸에 힘이 모두 빠져나가 저항할 수도 없어요. 제발 이러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월세가 석달이나 밀렸어요. 성폭력 당했다고 신고한 뒤부터는 그 아저씨와 아들이 찾아와 밀린 월세 달라고 난리예요. 월세를 못낼거면 당장 나가라고 해요. 무서워서 숨도 못 쉬겠어요. 제발 하루라도 빨리 그 아저씨 안 봤으면 좋겠어요. 이러다가 또 병원에 가게 될까봐 걱정이예요. 병원은 너무 싫어요. 다시는 가기 싫어요.”
“남편에게 성폭력 당한 이야기를 했고, 경찰에 신고해서 지금은 경찰에서 수사 중이에요. 그런데, 못된 아저씨가 경찰한테 자기는 잘못 안했다고 했대요. 나를 나쁜 여자라고 했대요. 나는 약 먹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나보고 잘못했대요. 제발 내 잘못 아니라고 해주세요.”
긴급복지 68만 원 지원…84만 원 갚아야
“성폭력당한 사실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던 날부터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쌀 한 톨 삼키지 않고 날마다 술만 마셔요. 일도 하지 않아요. 돈이 없어서 사채를 얻어 생활하던 중 성폭력상담소와 구청, 동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긴급복지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어 매월 68만 원을 지원받게 되었어요. 그 돈 모아서 밀린 월세 세달 치(84만 원) 얼른 갚아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감춰왔던 비밀을 털어놓던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더군요. 남편이 들을까봐 소곤소곤 이야기하던 그녀는 그 서러운 울음마저 소리 내어 울지 못했습니다. 속울음을 삼키며, 살짝 건네 준 토마토주스를 조심스럽게 마시던 그녀는 오늘(5월 22일), 그렇게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병원에 다시 입원했습니다.
근로능력이 있는 남편이 얼마 전까지 일정한 소득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가족은 수급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녀는 입원기간 동안 매월 70여만 원의 병원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68만 원의 정부보조금으로 한 달을 살아야하는 그녀는 병원비를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녀와 그녀 남편의 부모 모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없는 수급자입니다. 나이는 많고 일을 하실 수도 없습니다. 형제들이라고 별 수 있을까요?
“24살 아들은 군대를 가야해요. 언제 영장이 나올지 모르니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르바이트도 안 해요. 가족 중에 돈을 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장애인인권센터가 어디까지 그녀 가족을 도울 수 있는지, 우리 단체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인권단체’다운 행동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가해자(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 아저씨를 `너무너무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와 한 공간에 그대로 생활하도록 둘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녀의 아들이 느낄 분노와 그 분노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모멸감과 자괴감….
당장 집을 마련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위해 그녀의 지적수준과 심리상태, 사회성 정도에 대한 검사도 해야겠고, 치료도 받을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을 초과하니 당신들에게는 아무것도 지원해줄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사정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삶을 살 정도만이라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기다리십시오.” “기다리십시오.”…
어려운 가정형편에 놓인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임대주택을 가해자를 매일 봐야 하는 조건에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매월 68만 원의 보조금을 모으고 모아서 임대주택 보증금을 만들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그 가족들에게 그때까지 모멸감과 자괴감, 분노를 참고 있으라고는 차마 못하겠습니다.
내일은 토마토주스를 사들고 병원으로 찾아가봐야겠습니다.
▶후원계좌
- 광주은행(계좌번호 : 110-107-313981, 예금주 : 광주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모금목표액 : 500만 원
- 모금기간 : 목표액 달성할 때까지
박찬동 <광주장애인인권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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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성장애인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