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실록 검색 중...
태종 5권, 3년 기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李氏開國之功, 專在趙浚與南誾耳。 鄭道傳則善於言辭, 而居功臣之列。 其爲功臣亦當矣, 以功而論, 則當在五六間矣。 旣往之人, 今日不得不思也。 南誾若在, 則豈不樂乎? 父王時, 謂之兩鄭, 一夢周, 一道傳。 夢周當王氏衰季, 爲侍中而盡忠; 道傳感父王之恩而竭力, 二人之道, 皆是矣。
“이씨(李氏)가 개국(開國)한 공(功)은 오로지 조준(趙浚)과 남은(南誾)에게 있다. 정도전(鄭道傳)은 언사(言辭)를 잘하여 공신(功臣)의 열(列)에 있었는데, 그가 공신(功臣)이 된 것은 또한 당연하나, 공(功)으로 논하면 마땅히 5, 6등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미 간 사람들을 오늘에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남은이 만일 살아 있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부왕(父王) 때에 양정(兩鄭)이라고 일렀으니, 하나는 몽주(夢周)이고, 하나는 도전(道傳)이었다. 몽주는 왕씨(王氏)의 말년 시중(侍中)이 되어 충성을 다하였고, 도전은 부왕(父王)의 은혜에 감격하여 힘을 다하였으니, 두 사람의 도리가 모두 옳은 것이다."
드라마상에는 정도전의 행동대장 쯤으로 나오는 남은을 방원이가 높이 평가했다는 점도 흥미롭고, 자기 손으로 죽인 사람들을 제 입으로 그립다면서 "남은이 살아있다면 즐겁지 않겠는가"라는 멘트를 날리는 이방원은 역시 보통 멘탈의 소유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만 보낸 선죽교 때와는 달리 제1차 왕자의 난 때는 정도전과 남은 모두 이방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참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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