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민중의 집’서 40여 명 숙식 해결
지난해 5월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한 버마인 루엔티쏘(24) 씨. 최근까지 광주 산정동 호남고속철도 건설현장에서 일해왔지만 지금까지 일한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업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초 왼쪽 검지 손가락의 손톱과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사고까지 당했지만 산재가 아닌 공상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일하다 다쳤지만 손가락을 다쳐 일하지 못한 10여 일은 무급 처리됐다.
역시 지난해 5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 광주 산정동 호남고속철도 건설현장에서 일해 온 버마인 폐표앙(20) 씨도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임금인 390여만 원을 받지 못했다. 임금 체불로 당장 생계가 막막하지만 다른 곳에서 일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업장 변경 제한 제도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루엔티쏘 씨나 폐표앙 씨뿐 아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현장에서 일해온 버마·베트남 이주 노동자 60여 명이 수개월치의 임금을 받지 못해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버마 이주노동자 60여 명은 지난해 5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 호남고속철도 건설현장에서 일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임금체불을 겪었다. 광주 사업장에서 일했던 베트남 이주 노동자 8명도 최근 3개월 간의 임금과 퇴직금, 연차수당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계약조건이 모두 상이해 정확한 금액은 산정할 수 없지만 전체 체불임금 규모는 2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고용한 곳은 ‘(주)○○코리아’라는 하청업체로 대림건설, KCC, K-Water, 한양건설 등 원청으로부터 일을 수주받아 호남고속철도 건설현장 일을 해왔다. ‘(주)○○코리아’는 경영악화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로 체불과 관련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당장 생계가 막막한 상태다.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 일을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무단으로 현장을 이탈해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에게 엄격히 제한돼 있다. 국내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횟수를 3회로 제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전적으로 사업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 지난해 8월부터는 이주노동자들의 구직을 위해 제공해왔던 구인사업장 명단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중 최근 광주 민중의집을 두드렸다. 현재 광주 민중의 집과 금속노조, 민주노총 광주본부 법률원 등이 결합해 이들의 임금체불 문제 등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광주 민중의집과 이주노동자들은 원청의 공사 발주를 한 국토해양부가 책임지고 체불임금을 해결할 것과, 미지급된 추가 근무수당과 산재 역시 인정해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체불임금으로 사업장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사업장 변경 횟수에 포함하지 않을 것과 빠른 시일 내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장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주노동자 40여 명은 현재 광주 민중의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광주 민중의집 조은일 집행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임금체불이 발생할 경우 체류기간의 제한과 사업장 이동의 제한 등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원청이 책임지고 이들의 체불임금을 빠른 시일 내에 지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관청은 산업재해 은폐와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1만50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광주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노동권이나 인권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