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주,전남 지역소식

부부 군수 형제 군수는 지방자치의 진기명기

부부 군수 형제 군수는 지방자치의 진기명기


 

ⓒ시사IN 양한모

"특별사면 복권된 이후 너무 많은 은혜를 입은 화순군민들에게 어떻게 보답할지 고민 중이다."(ㅈ 전 군수)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분열된 지역 민심을 화합하도록 해야 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그 역할을 하고 싶다."(ㅇ 전 군수)

'부부 군수' '형제 군수'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희대의 선거판이 벌어진 전남 화순군에 또다시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지난 2월24일 대법원이 화순 군수에 대해 당선 무효형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 군수, 형제 군수로 화순을 지방자치의 전국 명소(?)로 만든 주역들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언론에 '다짐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두 사람이 맞붙게 된다면 화순군에서는 ㅈㆍㅇ 양가의 '군수 쟁탈전'을 세 번째 치르게 된다. 가히 한국 지방자치의 진기명기가 아닐 수 없다.

과정은 이렇다. 2002년 선거에서 당선된 ㅇ군수가 2년 만에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자 부인이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부부 군수의 영예를 안는다. 2006년 선거에서는 부인 군수가 떨어지고 ㅈ씨가 당선되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사임하고, 5개월 만에 치러진 보궐선거에 ㅈ씨의 동생이 나서 당선된다. 형제 군수의 탄생이다. 한데 동생 군수도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다. 그런데도 2010년 선거에 옥중 출마를 선언한 뒤 보석으로 나와 승리한다. 당시 맞붙은 상대는 부부 군수 중 남편인 ㅇ씨. 그런데 동생 군수에 대해 결국 당선 무효가 확정되자 형님 군수 ㅈ씨와 남편 군수 ㅇ씨가 3라운드에 돌입할 뜻을 밝히며 '군민에 대한 보답'과 '민심 화합'을 얘기한 것이다.

화순이 광주와 맞붙어 있다보니 이들의 행태가 단연 지역의 안줏거리가 되고 있다. 지방자치의 현장에 들어서면서 느낀 큰 문제점 중 하나가 토호들이었다. 수십 년 이상 온갖 인과관계로 얽힌 지역 문화와 환경 속에서 토호들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화순에서 벌어지고 있는, 웃지 못할 현상을 지역민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 정치 환경을 지배하는 경제력을 갖춘 토호들에 의해 여론 장악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화순의 지방자치단체를 10여 년간 좌지우지해온 두 집안도 이른바 과거 토호 세력의 근간인 '정미소 집'과 '양조장 집'에서 출발했다. 상상해보라. 조그마한 고을에서 정미소와 양조장을 중심으로 수십 년 엮인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울 주민이 얼마나 될까? 이 과정에서 면 단위, 마을 단위로 소지역주의까지 겹쳐 있다면 추론하건대 대하드라마가 따로 없을 성싶다.

재ㆍ보궐 선거비 원인 제공자에게 물려야

그렇다고 토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역을 지배하려는 중앙 정치가 이들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방관하거나 방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들린다. 여기에는 똑똑하고 유능한 기초단체장을 길러내거나, 그런 지자체장이 나타났다가는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중앙 정치인들의 이해도 깔려 있다. 특히 지역 독점적 정치구도를 유지해온 영ㆍ호남에서 단체장의 비리와 부정이 빈발하는 데는 이 같은 연유가 작용했다고 본다.

민선 4기(2006~2010년) 기초단체장 중 거의 절반인 113명이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 수수 등 범법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35명을 다시 뽑았다. 직접적인 재ㆍ보궐 선거 비용만 186억원이 들었다. 민주주의 비용으로만 치부하기엔 지켜봐야 할 시간이 지날 만큼 지났다고 본다.

법적ㆍ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고장의 명예가 실추된 점을 걱정한다. 그리고 재ㆍ보궐 선거 비용이 자신들의 세금이라는 데 분노를 느낀다. 최소한 재ㆍ보궐 선거 비용이라도 원인 제공자에게 징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선거법 위반이나 재임 중 범법 행위로 인한 재ㆍ보궐 선거에 대해서는 일정한 책임을 선거비용 징구로 물어야 한다. 기초단체장들의 범법이 대부분 돈과 관련돼 있다면 돈으로 응징하는 길이 범법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다. 하긴 단체장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일도 될 터이니 어찌 보면 무망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이병완 (광주광역시 서구의원·전 청와대 비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