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주,전남 지역소식

신안 외딴 섬에 ‘현대판 노예’ 충격

신안 외딴 섬에 ‘현대판 노예’ 충격
“일자리 준다” 속아 월급 한푼 못받고 수년간 ‘염전노예’
감시 피해 ‘도망갈 수 없으니 구출해 달라’ 노모에 편지


입력날짜 : 2014. 02.07. 00:00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했다는 들뜬 마음에 직업소개소 직원을 따라갔다가 외딴 섬에서 수년간 강제노역을 해온 장애인들이 경찰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6일 목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성실하게 일해온 지적장애인 채모(48)씨는 지난 2008년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목포 직업소개소 직원 고모(70)씨에 속아 신안군의 한 외딴 섬 염전으로 들어갔다.

채씨는 당시 “드디어 일자리다운 직업을 구했다”는 기쁨에 고무돼 있었을 뿐, 무임금에 노예처럼 부려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염전 운영자인 홍모(48)씨는 채씨를 하루 5시간도 채 재우지 않으면서 소금 생산은 물론 벼농사, 신축건물 공사 잡일, 각종 집안일을 시키면서도 월급 한 푼 주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채씨는 수년간 노예처럼 일만 해야 했다.

2012년 7월부터 채씨와 같은 염전에서 일했던 시각장애 5급 김모(40)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0년에 과도한 카드빚을 지게 되자 김씨는 가족에 짐이 되기 싫어 가출해 10여 년 공사장을 전전하며 서울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생활을 해오다 꼬임에 빠졌다. 2012년 7월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만난 직업소개업자 이모(63)씨가 좋은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하자 그 말을 믿고 이씨를 따라갔다가 채씨와 같은 처지가 됐다.

고된 염전 노동과 폭행에 지친 김씨는 채씨와 함께 섬에서 빠져나오려고 세 차례 시도했지만, 매번 발각돼 매질을 당해야 했다.

이들은 홍씨로부터 심한 협박을 받고 겁에 질려 더 이상의 탈출 시도는 포기했다. 염전에서 일하는 다른 지역 출신 근로자들이 워낙 많은 탓에 섬에서 김씨와 채씨를 이상하게 여기는 주민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씨가 홍씨의 감시를 피해 ‘섬에 팔려와 도망갈 수 없으니 구출해달라’는 편지를 어머니(66)에게 보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탐문에 나서고서야 이들은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확한 주소를 특정할 수 없었던 경찰은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해 섬 곳곳을 탐문수사한 끝에 지난달 28일 염전에서 일하던 김씨와 채씨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다. 김씨는 1년6개월, 채씨는 무려 5년2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김씨는 어머니와 헤어진 지 14년 만에 상봉해 함께 귀가했고 채씨는 가족과 지낼 형편이 못돼 영등포 소재 쉼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들을 유인한 직업소개소 직원인 고씨와 홍씨를 영리약취·유인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자격이 없는데도 불법으로 일자리를 알선해온 고씨와 이씨는 홍씨로부터 각각 수십만원의 수수료를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경찰은 이처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강제로 일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관계기관에 합동 전수조사를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안=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