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 사육사와 스트레스 쌓인 맹수의 잘못된 만남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호랑이가 사육사의 목을 문 사고가 일어난 지난달 24일 한 관람객이 호랑이 우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호랑이숲 조성을 위해 낡고 좁은 여우사에 무리하게 호랑이를 전시한 것, 곤충 전문가인 사육사를 맹수사로 인사발령 낸 것 등이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뉴스1 |
[토요판] 특집 / 동물원 살인사건
▶ 지난달 17일 제주도 한 관광농원에서는 사육중이던 반달가슴곰이 사육사를 물었다. 일주일이 지난 24일 서울대공원의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었다. 두 사육사는 결국 숨졌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열악한 사육시설, 비전문가인 사육사와 맹수가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인재’라는 점이다. 동물원 관리는 잘 되고 있는 걸까. 사육사와 관람객의 안전, 동물의 안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왜 돌아가셨는지는 가족도 모르고 대공원도 모르고 시청도 몰라요. 경찰 수사 발표만 기다리고 있는 우리도 답답해요.” 12일 자정이 넘은 시각,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대학생 아들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전날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1호실, 다음날 서울대공원장으로 장례를 앞둔 고 심재열(52) 사육사의 빈소는 한산했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를 포함해 전국 각지의 동물원에서 보낸 조화만 빽빽이 길을 막아섰다. 가족과 대공원 직원들만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은 서울시가 심 사육사의 순직을 인정하고 보상에서도 유가족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쪽으로 서울시와 유가족 사이의 타협이 이뤄진 날이었다. “잘 끝났어. (현장에 가봤더니) 시설이 안 좋아. 나머지 사람들은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서울시와의 협상에 참여한 둘째 형 심아무개(59)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랑이에 물린 지 2주 만인 8일 새벽 2시 숨진 심씨의 장례식장에는 슬픔과 노여움, 지친 피로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다음날 아침 8시30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큰물새장 아래쪽에서 서울대공원장으로 심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100명이 넘는 동료 사육사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아들의 마지막 사부곡을 들은 이들은 끄억끄억 울기 시작했다. 맹수사 사육사로 함께 일한 한 남성은 동료의 마지막 떠나는 길에 흰 국화꽃을 두고 고개를 떨궜다. 맹수사 사무실은 내년 5월 개장을 목표로 새로 조성중인 서울대공원 개장 30주년 기념 ‘백두산호랑이숲’ 공사 현장 뒤편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이 사육사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앉은 그는 힘들어 보였다. “지금 내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오. 홍보팀에 가서 물어보시오.” 사무실 안에는 심씨의 책상 위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책장 가득 꽂힌 곤충도감은 그가 곤충에 관심이 많았음을 보여줬다. 문을 열자 포클레인이 소음을 내며 지나갔다. 포클레인이 지나가자 바로 옆 우리에 갇힌 호랑이 3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피해자 목 오른쪽의 이빨 자국 2개 지난달 24일 일요일 오전 10시10분쯤 심씨는 호랑이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쓰러져 있었다. 호랑이 전시실 맞은편에 있는 동양관의 사육사들이 다친 심씨를 발견했고 400m 떨어진 식물원 앞 간이식당 직원이 구조 요청을 했다. 10시28분 119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심씨는 동양관의 한 사육사 무릎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호랑이 로스토프(3)는 전시장 밖으로 나와 심씨로부터 5m 떨어진 통로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심씨와 동양관 사육사, 구조대 모두 호랑이와 141㎝ 높이의 창살문 하나를 두고 대치했다. 만일 호랑이가 관리자 문을 뛰어넘었으면, 사람들이 평소 다니는 길에 호랑이가 진입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 동물마취총을 구비한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기 전 호랑이는 자기 발로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에 제일 먼저 출동한 과천소방서 과천119안전센터 김동공(40) 소방장이 말했다. 서울대공원과 아트랜드서사육사를 공격해서 죽인
로스토프, 대장이, 순이
맹수 특성 고려하지 않으면
관람객까지 위험할 수 있다 ‘어흥’이나 ‘으르렁’ 아닌
‘아우웅’‘어으’ 울음소리
로스토프는 암컷이 그리웠다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토해내는 수컷의 절망이었다 “피해자 목 오른쪽에 손톱 크기의 이빨 자국 2개가 나 있었고, 목동맥을 확인해보니 이미 의식이 없었어요. 대공원 관계자가 구급차를 따라 타려고 했는데 긴박한 상황이라 다른 차 타고 뒤에 오라고 했어요. 호랑이가 우리로 들어가자 주변에서 ‘문 잠가’, ‘문 잠가’ 소리가 들렸어요.” 이번 사건의 자세한 정황은 여전히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근처에 폐회로카메라(CCTV)조차 없어 경찰도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업무지침을 보고 추정할 뿐이다. 사육사는 보통 출근시간인 8시 이후 10여분간 밤새 동물의 상태를 살핀 이후 2시간 동안 사육장 청소와 먹이주기를 병행한다. 사육사가 밖에 있는 조작장치를 통해 내실 문을 열면, 밤새 내실에 갇혀 있던 동물은 대개 전시장으로 나온다. 이를 확인한 사육사는 문을 잠그고, 밀실이 된 내실 안으로 들어가 청소를 한다. 청소가 끝나면 먹이를 두고 나와 내실 문을 연다. 동물은 먹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고, 사육사는 다시 내실 문을 닫는다. 이때부터 전시장 청소가 시작된다. 문제는 사고 당시 밖에서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육사가 호랑이가 있는 전시장 안에 들어갔거나, 내실에 있던 호랑이가 전시장으로 나와 사육사를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공원 쪽은 “사고 당시 내실 문은 잠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30년 된 여우사의 내실 문이 그리 튼튼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도 끊이지 않는다. 2일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의 한 관광농원(제주아트랜드)으로 들어가는 길은 썰렁했다. 구름이 낀 흐릿한 날씨는 이곳을 더욱 한산하게 느끼게 했다. 억새 핀 1차선 길을 따라가자 성처럼 웅장한 정문에 도달했다. 아기자기한 분재들이 심어진 넓은 정원 뒤편에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4~5명의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콘크리트로 만든 가로 5m, 세로 5m, 깊이 3m 크기의 지하 우리를 내려다보며 감귤을 던졌다. 그들의 시선 아래 반달가슴곰 4마리가 두 발로 서서 겅중거리고 있었다. “주세요, 주세요 해봐라. 아이고 잘하네.” 곰의 재롱에 즐거워하던 관광객들에게 관리인 박정갑씨가 말했다. “옆 우리에 2마리가 더 있었는데 곰이 관리인을 물었어요. 관리인은 숨졌고 곰들도 사살됐습니다. 지금은 새끼들만 4마리 있습니다.” 열흘 전부터 곰을 관리하고 있다는 박씨는 관광지가 매각될 때까지만 일하기로 했다. 12발의 실탄 맞고 죽은 대장이와 순이 지난달 17일 일요일 아침 6시30분 이 업체의 관리인 임아무개(당시 79살)씨는 평소와 같이 일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지난밤 동료 직원이 부탁한 대로 정문 근처 무밭에서 무를 3개 뽑으러 다녀왔다. 그리고 임씨는 곰에게 아침밥을 주기 위해 사료를 담아 우리 앞 나무데크 위에 두었다. 그 우리의 주인은 2005년생 수컷 대장이와 암컷 순이였다. 둘은 다 자란 곰으로 부부였다. 그게 임씨의 생전 마지막으로 확인된 모습이었다. 오전 9시 동료 직원 박정아씨와 업체 회장인 황아무개(63)씨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항상 사무실에 들러 박씨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임씨가 보이지 않았다. 황씨가 임씨를 찾아나섰다. 황씨는 임씨를 대장이와 순이의 우리 안에서 발견했다. 임씨는 곰들에게 공격받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9시34분 황씨의 신고를 받고 제주 동부경찰서 소속 구좌지구대 경찰관들과 제주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출동했다. 10시 무렵 제주대 수의과 소속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문경화 수의사와 영산강유역환경청 제주사무소 박수홍 주무관도 현장에 도착했다. 임씨는 곰들이 자는 내실 앞쪽까지 끌려가 있었다. 곰들은 우리 안쪽에서 경찰이 쏘는 권총 소리에 흥분한 듯 왔다갔다했다. 지원 요청을 받고 인접 지역인 조천, 함덕 지구대에서도 경찰들이 달려왔다. 문경화 수의사가 당시를 돌아봤다. “도착해보니 경찰관이 이미 실탄 몇 발을 쏜 상태였어요. 기동타격대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어서 마취라도 해 달라고 했어요. 마취총 2발을 한 마리를 향해 쐈어요. 한 마리는 구조물 같은 데에 숨어 있었어요.” 환경청이 정한 매뉴얼에 따르면 야생동물을 포획할 땐 마취총부터 쏘게 되어 있다. 임씨의 시신을 추가로 훼손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실탄사격이 이뤄졌다는 게 관련자들의 공통된 대답이었다. 경찰은 마취총보다 실탄을 먼저 발사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이날 경찰들은 38구경 권총으로 12발의 실탄을 발사했다. 경찰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암컷이 10시20분쯤 권총을 맞고 죽었음을 확인했다. 10시40분쯤 제주 동부경찰서 기동타격대원들이 도착했다. 남은 한 마리에게 K-2 소총 4발을 더 발사했다. 남은 수컷도 사살됐다. 임씨의 사인은 피를 많이 흘린 것이었다. 일명 실혈사, 저혈성 쇼크사였다. 임씨를 부검한 제주대학교 법의학과 강현욱 교수는 “다리 쪽의 대퇴동맥과 팔 쪽의 요골동맥이 파열돼 과다출혈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 몸에 곰이 할퀸 자국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는 부서진 사다리와 임씨의 모자가 남아 있었다. 곰 우리를 비추는 시시티브이는 없었다. 제주 동부경찰서 쪽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업체 운영인 황씨를 입건해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12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심재열 사육사의 영결식을 찾은 동료 직원들이 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
사육사는 강아지처럼 여겼고
내실 관리도 그만큼 허술했다
날이 춥고 아침도 먹지 않아
예민하지 않았나 추정됐다 야생에서 만난 맹수보다
동물원 맹수가 더 위험하지만
관람객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동물의 번식·활동 고려 않고
사육사 안전도 무방비 상태 로스토프가 맞이한 상황은 그의 울음소리에서도 나타난다. 2~3일 방문한 여우사 우리는 검은 천으로 둘러져 있었다. 이틀간 대여섯시간 동안 머물렀더니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흥’이나 ‘으르렁’ 하는 소리가 아니라, ‘아우웅’, ‘어으’ 하는 소리였다. 야생에서 좁은 굴을 만들어 20여년간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하고 7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박수용 사이베리아타이거프로텍션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기자가 녹음한 로스토프의 울음소리를 분석했다. “로스토프의 울음소리를 분석해보면, 두세번 ‘아웅’ 하고 울다가 ‘어으’ 하고 두 음절을 내뱉기를 반복하는데, 이는 야생의 호랑이들도 자주 내는 소리입니다. 먼저 ‘아웅’ 하는 소리는 대개 유대감을 표시하거나, 다른 호랑이를 만나고 싶어할 때 내는 소리입니다. 가까이 지내던 가족, 친구, 짝이 곁에 없을 때 이런 소리를 많이 내고, 배란기를 맞은 암컷을 쫓는 수컷들도 이런 소리를 냅니다. 또 ‘아웅’을 한 뒤에 내는 ‘어으’ 하는 소리는 심리적 강박증을 나타냅니다. 보통 야생에선 수컷들끼리 영역다툼을 한 뒤, 패배한 수컷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토해내는 절망의 소리입니다. 동물원에선 넓은 곳에 있던 호랑이가 갑자기 좁은 독방에 갇혔을 때 내는 소리입니다.”
지난해 4월7일 반달가슴곰 수컷 대장이가 자신이 살던 제주시 구좌읍 관광농원 안 우리에 설치된 놀이터에 앉아있다. 1년7개월 후인 지난달 17일 대장이는 담당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하고 자신도 사살됐다. 제주/최우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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