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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어뷰징, ‘참을 수 없는 유혹’인가?

출처: 신문과 방송 12월호 박동근 /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온라인심의위원

어뷰징은 언론사가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포털에 제목과 기사의 일부를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내용이 같거나 비슷한 기사를 반복적으로 전송하는 것을 말한다. 각 언론사는 그동안 포털 이용자의 관심이 높은 실시간 검색어와 연동해 비슷한 기사를 하루 수백 건 이상 양산해왔다.

그러다가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출범하자 어뷰징은 일제히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줄긴 했어도 어뷰징 기사가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다. 평가위의 제재를 피해 같은내용을 1년 혹은 몇 달 주기로 반복 재생산한다
거나, 같은 내용을 여러 개의 주제로 나눠 별도의 기사로 작성하는 기사 쪼개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어뷰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유형 1. 한성주 동영상 사건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자. 한 종편이 2018년 10월 22일 방송인 한성주 동영상 사건을 재조명해 시청자의 원성을 샀다. 이날 방송은 동영상을 유포한 전 남자친구 크리스토퍼 수에 대한 정보와 동영상 유포 이유, 한성주와 크리스토퍼 수 양측의 주장을 언급했다.


그러자 OO경제는 2018년 10월 25일 ‘한성주 전 아나운서 근황, 이제 복귀 시동 거나?’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리벤지 포르노’를 키워드로 동영상 부분만 강조한 것인데, 막상 인용한 소스는 또 다른 종편의 4월 6일 방송 내용이었다. 이어 30분 뒤 한성주 전 아나운서의 근황을 전하더니, 26일 오전에는 ‘한성주, 당시 사생활 동영상 유출한 남친 처벌 안 받았다?’, 한 시간 뒤에는 ‘크리스토퍼 수 누구? 사생활 동영상 유포한 한성주 전 남친’ 등의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10월 22일 종편 방송의 내용을 인용했다. 그리고 ‘한성주-크리스토퍼 수 동영상 파문 다시 수면 위로… 네티즌, 잊힐 권리 필요하다’라는 기사를 추가했다.

이 사건은 이미 6년 전에 발생했고, 새롭게 밝혀진 내용도 없다. 가뜩이나 종편이 해묵은 연예계의 가십거리나 추문을 들춰 논란을 빚어온 터인데 어뷰징까지 한 것이다.

유형 2. 종현 사망사건

어뷰징의 대표 사례는 아이돌 가수 종현의 자살 보도다. 2017년 12월 18일 국내 다수의 온라인 매체는 한 아이돌 가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엄청난 양의 ‘자살 관련 기사’를쏟아냈다. 이 가운데 종현의 과거 발언과 모습을 여러 차례 재조명하거나 빈소 분위기를 시시콜콜 기사화하는 등 기사 건수 늘리기에 골몰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신문윤리위는 그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7개 언론사에 ‘주의’ 결정을 내렸다. A신문은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146건을 보도했다. 같은 기간 B신문 5건, C신문 11건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가수 태연 공연, 빈소 스케치, 과거 멤버 TV 출연 재조명, 발인 기사, 발인 스케치 포토 등이다. 이 가운데 3건의 기사는 별도의 독립기사로 보이지만 조금씩 문장만 바꿔 다른 기사처럼 보이게 했다.

D신문은 126건을 보도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MBC FM ‘푸른밤’에서 전임 진행자 종현을 애도했다는 내용의 기사 3건을 올렸으나, 추가로 올린 2건은 새로운 내용이 없는 복제기사이며, 경찰이 부검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도 같은 내용임에도 2건으로 만들었다.

E신문은 134건인데, 같은 내용을 큰 줄거리 삼아 유사한 내용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짜깁기해 여러 개로 만들었다. 같은 내용을 재탕해 꼭지수를 늘리거나 빈소에서의 모습 등 가수 태연 기사로만 10건을 생산하기도 했고, 거의 차이가 없는 사진에 설명을 달고 제목만 약간 바꿔 중복 게재한 경우도 있었다.

유형 3. 과거 기사 재탕

OO신문 2018년 1월 18일자 ‘고현정 전격 고백, 조인성에 청혼했었다’ 제목의 기사는 무려 9년 전
기사를 재탕한 것이다. 배우 고현정이 새 드라마에 복귀한 것을 계기로 그가 과거 동료배우 조인성에게 청혼했다고 밝힌 사실을 재론하고 있는데,

이는 2009년 1월 한 TV 방송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신문은 이 내용을 처음 다룬 것이 아니다. 네이버
에서 검색해보면 같은 내용을 2015년 7월 11일 이후 다섯 차례나 썼다.


이외에도 또 다른 형태의 어뷰징도 나타났다. OO닷컴 2017년 12월 15일자 뉴스스탠드 편집이 그 예다. 해당 뉴스스탠드에는 두 가지 제목이 올랐으나 클릭해보면 하나의 기사로 연결되도록 했다. 신문윤리위는 이 또한 사실상 재전송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행태는 여러 차례 지적된 때문인지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인터넷 조어, 언어 변질과 파괴 조장 우려

온라인신문 심의는 24시간 시시각각 바뀌고 기사량도 방대해 심의하는 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심의 인력도 충분치 않아 종이신문과 달리 전수 심의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문제 있는 기사를 모두 걸러낼 수는 없다. 신문윤리위는 출범한 지 올해로 58년째다. 그러나 온라인 심의는 올해 6년째로 연륜이 짧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심의도 시대 흐름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신문윤리강령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온라인 심의에서는 강령을 상당히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조어다.

불과 몇 해 전 신문윤리위는 제목에 ‘멘붕’이란 표현을 썼다고 해서 제재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온라인이 아닌 종이신문에 실린 제목이다. 당시에는 사전에도 없는 언어파괴적 조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지금은 ‘멘붕’이 일상적인 표현이 됐다. 젊은 세대가 창의적인 시각으로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이를 온라인에서 공유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사회 현상이다. 그러나 언론이 이를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언어의 변질과 파괴를 부추길 우려가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유형 1. 제재 사례
OO경제신문 2018년 6월 16일자 기사의 제목은 ‘호날두가 호날두 했다’이다. 이 신문은 모스크바
월드컵축구대회에서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혼자3골을 넣어 스페인과 3-3 무승부를 이루는 데
수훈을 세우자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신문윤리위는 고유명사에 ‘-하다’ 접미사를 붙여 동사나 형용사
처럼 사용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으나, 아직 다수의 대중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는 단계라고 보기 어렵고, 문법 파괴를 확장할 수 있다고 여겨 ‘주의’ 결정을 내렸다.


OO스포츠는 2018년 6월 19일자에서 ‘삐까뻔쩍 한화 강경학, 주전의 진화 기회가 왔다’고 제목을 달았다. 올해 빼어난 활약을 했다는 의미로 ‘삐까뻔쩍’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삐까뻔쩍’은 일본어 ‘삐까삐까(ぴかぴか)’와 우리말 ‘번쩍번쩍’이 반씩 섞인 말로, ‘뻔쩍뻔쩍’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일제 잔재이자 낡은 비속어로 표현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3년 전 ‘주의’ 결정을 받은 OO신문 기사의 제목 ‘내로남불 오재원 빠던에 사이다 외친 야구팬’은 게재 당시에는 생소한 편이었지만 이제는 상당히 익숙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 야구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한국대표팀의 오재원 선수가 큼직한 타구를 날린 뒤 배트 플립을 선보이자 이렇게 제목을 단 것이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빠던’은 타격 후 배트를 던지는 행위, ‘사이다’는 말 그대로 사이다와 같은 짜릿한 청량감을 의미한다. 이 밖에 몸부심(몸매가 빼어남), 랩알못(랩을 알지 못하는 사람) 등도 ‘주의’ 결정을 받았다.

유형 2. 제재 회피 사례


비슷한 사례이긴 하나 신문윤리위에서 불문에 부쳐진 경우도 있다. OO신문은 2018년 6월
11일자 기사에서 가수 연습생 출신인 한서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한서희 대한민국 1등 관종했다, 인기 식질 않는구나’로 달았다. ‘관종’은 ‘관심종자’의 줄임말로, 지나치게 관심을 끌려는 성향의 사람을 의미한다. 인터넷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신조어지만, 이를 신문 표제에 사용하는 것은 언어의 변질과 파괴를 부추길 우려가 있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신문윤리위는 그러나 언어란 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청소년 사이에 널리 쓰이는 표현을 문법에 어긋난다고 무조건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있는 만큼 제재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OO스포츠 2017년 10월 24일자 ‘태연, 크리스마스엔 믿듣탱, 연말 콘서트 개최’도 회의에 상정됐으나, 제재를 피했다. 기사에 없는 생경한 어휘를 아무 설명 없이 제목에 붙였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중·장년층엔 익숙지 않은 표현이나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믿듣탱’이 ‘믿고 듣는 태연’이란 뜻으로 통용되는 말이므로 언어파괴적 요소가 있다기보다는 청소년층의 트렌드를 반영한 용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급박하게 변화하는 인터넷 속성상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신조어를 무조건 제재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내린 조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