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신문과 방송 2018.12 이성규 / 메디아티 테크랩장
180여 년 전인 1833년, 신문 비즈니스 역사에 획기적인 분기점이 만들어졌다.
뉴욕선의 창업자인 벤자민 데이(Benjamin Day)는 1부당 6센트였던 신문 가격을 1센트, 즉 1페니로 낮춰 판매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의 후원과 연간 구독료로 지탱해온 이전의 수익 모델을 과감하게 벗어던졌다. 대신 지면에 광고를 채워 부족한 수익을 메워냈다.
가끔씩 광고를 게재하며 보조 수익을 취하던 신문사는 있었지만, 광고를 주력 수익 모델로 설정한 신문은 뉴욕선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수익 모델의 변화는 콘텐츠와 포맷의 변화를 요구했다. 뉴욕선은 ‘일하는 이들의 신문(working class)’을 표방하며, 엘리트 집단을 타깃으로 한 고급지 전략과 결별했다.
이를 위해 정파성과 거리두기를 시작했고, 범죄나 일상을 주요 뉴스 대상에 포함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으로 지면을 채워가며 정보의 대중화를 꾀한 것이다.
광고라는 수익 모델은 더 많은 주목을 얻어낼 때만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다. 시장 규모가 더 큰 노동자
를 핵심 타깃 독자로 설정한 이유도, 도달률을 높이기 위해 길거리 판매를 도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뉴스보이(newsboy)’라는 신문의 새로운 유통 시스템은 따지고 보면 광고라는 수익 모델의 부산물이다.
광고의 황금시대와 언론의 재벌화
광고라는 수익 모델을 만나 신문 가격이 하락하자 정보는 민주화의 흐름을 타게 됐다. 엘리트들이 6센트 신문으로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는 서서히 균열을 드러냈다.
일하는 사람들도 페니 신문을 구매해 정치, 경제, 사회 정보에 눈을 뜨게 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새로운 사회적 국면과도 조우하게 됐다. 광고 수익 모델이 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창조해낸 혁신적인 문화 풍경이다.
180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며 광고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전역에 철도가 놓이면서 지역 중심의 광고 모델은 전국화됐다(Beniger, 2009). 무엇보다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상품의 풍요(공급 과잉)로 광고 시장은 더욱 크게 성장했다.
공급 과잉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광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었고, 성과도 두드러졌다. 논란이 있지만, 수요를 창출하는 장치로 광고의 효과는 곧 신화로 자리 잡게 됐다. 크로웰(Henry Parsons Crowell)이 만들어낸 오트밀 패키징 광고의 역사가 이를 방증한다.
수익 모델로서 광고 시장의 성장은 신문사의 황금기를 빠르게 앞당겼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2년, 광고 시장은 미국 기준으로 GDP의 3%까지 성장했다.2 2010년 이후 광고 시장 규모가 전체 GDP의 1% 내외3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31광고라는 먹거리가 제공한 미디어 산업의 성장 기회가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광고라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바탕으로 북미 지역 신문들은 최대의 호황을 누리며 거대한 미디어 재벌로 재탄생하게 됐다. 광고가 아니었다면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둘 수도, 1900년대 초반 합종연횡을 거쳐 미디어 재벌이 탄생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플랫폼의 등장과 비즈니스로서 광고의 위기
사실상 광고 시장을 독과점하던 뉴스미디어 역사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됐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통적인 미디어는 수용자, 넓게는 소비자와의 접점을 독점하면서 몸집을 키워왔지만, 거대한 기술적 파도를 만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180년 전에 시작된 둘의 인연이 시나브로 헤어짐을 준비하는 단계로 빠르게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1) 광고의 디지털 기술화
광고와 뉴스의 이별을 촉발한 첫 번째 요인은 기술이다. 벤자민 데이 시대만 하더라도 광고는 콘텐츠의
한 유형이었다. 지면 콘텐츠만으로 신문은 광고주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줄 수 있었다. 소비자의 주목과 돈을 교환하는 데 기술은 큰 장벽이 아니었다. 뉴스미디어가 더 많은 주목을 끌어오기만 하면 광고주
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인터넷은 이 교환의 중간고리에서 기술의 몫을 창조해냈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미디어의 형태와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기성 뉴스미디어는 광고주가 필요로 하는 정확한 타깃팅
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다. 광고주들은 자신들이 광고하는 상품이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정확한 기법을 요구했고, 이 틈새를 구글과 같은 기술 거인들이 기술을 동원해 해결한 것이다.
프로그래매틱 광고(programatic buying)가 대표적이다. 이 광고 상품은 고도의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타깃팅 정확도를 개선했다. 2017년 미국 기준으로 디지털 디스플레이 광고 시장의 78%가 이 방식으로 거래될 만큼 이제 주류가 됐다. 2019년이면 그 비중이 83%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1]
이 광고 상품 이면에는 복잡한 알고리즘과 소비자의 취향 추출 및 분류 기술, 밀리초 단위의 변화까지 감지해 광고를 추천하고 심지어 경매까지 완료하는 숙련된 소프트웨어 역량이 결합돼 있다. 인터넷 사용자의 취향과 광고주의 기대를 실시간으로 매칭해 구매 전환을 높이는 데 기술의 몫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그동안 광고 관련 기술 개발에 소극적이던 뉴스미디어들은 기술 거인들의 광고 시장 장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생존과 본질이 기술인 거대 플랫폼 기업들과 뉴스 및 저널리즘 생산이 본질인 뉴스미디어 기업들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테크놀로지 계곡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신문 발행이나 방송 전파로 주목을 얻어 상품을 팔아주던 전통적인 광고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2) 광고-허위정보 거래의 통제 불능
광고라는 수익 모델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품고 있다. 벤자민 데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신문 광고는 기본적으로 군중의 주목(Attention)을 유도하고 이를 돈을 받고 팔아야 하는 수익 모델이어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를 생산하는 건 불가피했다. 그 유명한 ‘달 날조 기사(moon hoax)’를 1835년에 유포한 것도 광고를 주된 수익 모델로 삼은 뉴욕선이었다. 당시 뉴욕선의 기자는 달에 큰 산과 초목이 무성한 숲 그리고 네 발 달린 짐승의 모습을 한, 의식을 가진 존재들을 발견했다고 보도하기까지 했다(이충환, 2013. p.77).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광고 판매를 유도한 악질적인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광고는 미디어의 수익 모델로 자리 잡는 시점부터 선정성, 허위정보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가 됐다. 소비자들의 주목과 돈이 교환되는 구조적 특성상 선정성 경쟁은 불가피했다. 최근 가짜뉴스의 횡행은 1835년 달 날조 기사와 양상이 정확히 일치한다.
뉴스는 신뢰의 기반 위에서 수익 모델을 작동시켜야 하지만 광고는 이 신뢰를 끊임없이 위협해왔다. 뉴스미디어는 신뢰와 수익 관리에서 그동안 노련하게 수완을 발휘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들의 알고리즘이 뉴스 유통 과정에 끼어들면서 허위정보는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 중이다.
특히 유사 뉴스기관이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를 통해 허위조작정보를 생산해 퍼날랐고, 그 대가로 광고 수익을 취하면서 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광고 수익의 감소를 우려하던 기성 뉴스미디어들은 신뢰를 갉아먹는 뉴스를 생산해가면서 트래픽 몰이에 편승했다. 단적인 예로 CNN은 2016년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 트래픽을 얻기 위해 모험을 강행, 10억 달러 매출 달성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36년 역사상 가장 큰 폭의 성장세였다. 국내 언론사들의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어뷰징은 굳이 들먹일 이유도 없다.
광고 수익을 둘러싼 트래픽 쟁탈전으로 혼탁해진 미디어 생태계는 신뢰와 수익의 균형 모델이 깨지고 있다는 징후다. 신뢰라는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한된 광고 시장을 선취하기 위한 뉴스
미디어들의 저열한 질주는 그들의 존재 의미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 틈을 타고 허위조작정보는 활개 치고 있으며 그 위력은 광고에 의존할수록 배가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신뢰냐 광고냐, 그것이 문제인 절박한 분기점에 뉴스미디어들이 서 있는 것이다.
언론사에게 남은 선택지 : 수용자 수익 모델Attention Merchants의 저자이자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인 팀 우(Tim Wu)는 ‘공짜에 대한 우리의 중독을 극복해야 한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뉴스나 콘텐츠에 무료로 접근하는 대신 광고에 인지 에너지를 쏟아붓는 방식은 처음부터 이상했다는 평가도 내놨다. 또 그는 우리가 걷고 뛰고 움직이는 모든 물리적, 가상적 공간을 광고로 도배해야 하는 상황은 ‘공짜 중독’에 빠져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다고도 했다.
온갖 형태의 지저분한 광고로 웹이 오염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지적은 곧장 수용자 수익 모델(Audience Revenue)로 향한다.
공짜를 위해 주목을 팔지 말고 상품 자체에 과금하라는 권고다. 이 합의가 체결되지 않는다면,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로, 초·중등 공립학교로 침투 경로를 확장하는 광고의 무한확장 DNA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독 경제, 나아가 수용자 수익 모델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귀결이 된다. 넷플릭스나 옥수수, 음악 분야의 스포티파이처럼 광고를 걷어내는 대신 구독료를 요구하는 콘텐츠 플랫폼도 늘고 있는 추세다.
수익원으로서 광고의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콘텐츠의 창조성에 기반한 네이티브 광고는 여전히 뉴스미디어가 영위할 수 있는 유력한 선택지 중 하나다. 네이티브 광고 시장의 규모도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유형만으로는 수많은 뉴스미디어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없다. 네이티브 광고가 하나의 비즈니스 창구로 기능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빈 곳간을 채우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학습 본능을 잃어버린 자들의 슬픔
국내도 이 거대한 물결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신문에 이어 방송사의 광고 매출마저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그림2]
신문보다도 그 속도가 빨라 보인다. 일시적이냐 구조적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TV 광고 자체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면 명제 자체를 기각할 수준은 아니다. 2017년 기준 신문은 55% 내외, 지상파 방송은 40~50% 내외의 매출 비중(방송통신위원회, 2018.6. p.17)을 차지하고 있는 광고가 지속적으로 빠져나갈 경우 경영상 위협이 현저해질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대부분의 광고가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그 자리를 기성 방송사나 신문사가 파고들지도 못하고 있다. 직접 영업해서 빼앗아올 수 있는 시장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기술 중심의 광고 상품이 늘어나면서 모바일은 온전히 플랫폼의 잔칫상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광고는 효과와 효율을 생명으로 한다. 효과와 효율은 타깃팅의 정확도에 비례한다. 기술 거인들이 천문
학적인 규모의 광고 매출을 올리는 비결이다. 이들은 사용자들이 내놓은 막대한 양의 신상정보를 학습
해 타깃팅의 정확도를 끌어올린 뒤 광고주를 유혹한다. 신상정보는 광고 매출의 알토란 같은 원료다.
그들은 사용자들이 탈퇴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신상정보를 분석해 광고 타깃팅의 정확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반면 언론사는 광고주를 흡인할 만한 재주가 별로 없다.
일부 글로벌 미디어를 제외하고는 학습할 원료를 모으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했다. 무엇을 학습해야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국내 언론사 어느 곳에서도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추적하고 학습해 새로운 광고 상품을 내놨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영국의 가디언처럼 프로그래매틱 파트너와 협약을 체결했다거나 공동 상품 개발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없다.
광고 시장에서 뉴스미디어 설 곳 없어
플랫폼 기업들은 더 많은 광고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하드웨어까지 개발하고 있다.
넥스트 광고판 후보군이다. 페이스북은 다음 시대는 VR가 될 것이라고 외치고 있고, 구글, 아마존, 네이버, 카카오는 AI 스피커가 대세라고 말한다.
뉴스를 소비하는 다음 공간이 어디가 되든, 기성 뉴스미디어들은 설 곳이 마땅치 않다. 그저 플랫폼이 더 많은 신상정보를 모아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미끼’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플랫폼 사업자들의 들러리는 될 수 있어도 광고 비즈니스에서 핵심 사업자로 전면에 등장하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2017년 전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은 21% 성장했다.
그중 90%는 페이스북과 구글 몫이다.7
광고 시장과 뉴스미디어의 성장은 이제 별개의 영역이 됐다. 여기에 아마존과 월마트라는 강력한 도전자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바로 집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다시금 확인하지만 성장하고 있는 광고 시장에서 뉴스미디어가 차지할 몫은 별로 없다.
시장을 주도할 기술과 역량, 자원도 부족하다. 플랫폼 기업들이 더 많은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학습 미끼’로 동원되는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180년 저널리즘과 광고의 불편한 동거는 이제 청산 시점에 왔다. 180년간의 모진 인연을 뒤로하고 저널리즘은 자신의 상품과 가치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수용자 기반 수익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벤자민 데이의 ‘영화’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생태계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
참고문헌
‧ 강준만(2010), 미국사 산책 4, 인물과사상사.
‧ 방송통신위원회(2018.6), 2017년도 방송사업자재산상황 공표집.
‧ 이충환(2013), 저널리즘에서 사실성, 커뮤니케이션북스.
‧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분석팀(2018), 한국의 언론인 2017–제13회 언론인 의식조사, 한국언론진흥재단.
‧ Beniger, J.(2009), The control revolution: Technological and economic origins of the information society, Harvard university press. 윤원화 옮김(2009), 컨트롤 레볼루션, 현실문화.
‧ Hansen, E., & Goligoski, E.(2018), Guide to audience revenue and engagement.
1 https://www.library.illinois.edu/hpnl/tutorials/antebellum-newspapers-city/
2 https://galbithink.org/ad-spending.htm
3 https://www.wfanet.org/news-centre/ad-spend-as-of-gdp-new-metric-to-measure-health-of-industry/
4 https://www.appnexus.com/sites/default/files/whitepapers/guide-2018stats_2.pdf
5 https://www.theatlantic.com/business/archive/2016/10/tim-wu/504623/
6 수용자 수익 모델은 크게 기부(donation)와 구독, 멤버십으로 구분된다(Hansen & Goligoski, 2018).
7 https://adexchanger.com/online-advertising/digital-ad-market-soars-to-88-billion-facebook-and-google-contribute-90-of-growth/
프로그래매틱 광고
- 프로그램이 자동적으로 이용자의 검색 경로, 검색어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광고를 띄워 주는 광고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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