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두 곳에 합격했다. 1997년 4월 iTV(인천방송) 공채1기 예능PD를 선택했다. 고난길이 시작되는 줄 몰랐다. 교수님을 비롯해 주변에서 iTV가 SBS처럼 발전할 것이라 기대했다. 군 생활을 인천에서 했다. 서울에 비해 소외된 인천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경인지역엔 DMZ도 있고 작은 섬이 많으니 이를 이용한 쇼 프로나 예능도 구상했다. 지역문제에 근거한 시사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PD 유진영은 이런 방송들을 만들고 싶었다.
생의 절반을 경인지역에 뿌리내렸지만 지역의 문제를 잘 전달했는지 의문이다. 입사 20년이 지난 2016년 12월 그는 생사를 걱정하고 있다. OBS는 살아날 수 있을까, 지역민영방송은 어떻게 가능한가? 미디어오늘은 iTV를 거쳐 OBS 9년을 지켜온 유진영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장을 26일 경기도 부천 OBS사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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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영 언론노조 OBS희망조합지부장. 사진=OBS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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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지부장이 iTV에 입사할 당시는 SBS가 지역민영방송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던 중이었다. 서울이 대한민국을 대리하던 상황에서 지역민들을 위한 지역민방이 성장하는 분위기였다. 1998년 외환위기로 모두가 어렵긴 했지만 iTV는 LA다저스 박찬호 선수의 경기 중계권을 따내 한창 브랜드가치를 올려갔다.
노사의 동상이몽이 시작됐다. 박찬호 중계권을 계기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대주주는 투자를 끊었다. 유 지부장은 “1대주주 동양화학은 투자를 안 하겠다 선언했고, 2대주주 대한제당은 iTV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한제당 사장은 지난해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의원직이 박탈된 박상은 전 새누리당 의원)
노사가 갈등하며 iTV는 길을 잃었다. 2004년 12월 결국 정부로부터 재허가를 받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퇴직금을 반납해 기금을 만들고 새방송창사준비위원회를 꾸렸다. “기자들은 논술학원·과외 선생을 하며 버텼죠. PD나 기술파트는 외주제작이나 프리랜서, 경영파트는 대리운전·주유소 알바를 했죠.” 그들은 ‘내 손으로 만드는 경인지역방송’을 꿈꿨다.
모든 걸 내놨으니 금방 시작될 줄 알았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어져 꼬박 3년을 채웠다. 정보통신부는 2007년 12월28일 방송허가를 내줬다. OBS 경인TV는 그렇게 탄생했다. 경인지역 시민사회가 지지했다. 1400억원으로 시작했다. 대주주 영안모자 역시 수익성보단 공공성을 우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유 지부장처럼 iTV를 거쳐 OBS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OBS는 남다르다. “후배들은 힘들 때 마다 많이 나가지만 이제 우린 억울해서 못나간다. 새 방송을 탄생시켰고, 역사를 만들어 낸 것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다. 후배들은 힘든 상황만 겪었다. 회사가 살아나면 후배들이 지역방송의 주체로 꿈을 실현해야 하는데 안타깝다.” OBS지부 124명 중 71명은 iTV 때부터 함께한 동료들이다.
OBS는 지난 9년간 약 41억원 증자를 했음에도(자본금 1441억원) 현재 30여억원 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추세라면 자본잠식상태에 놓일 위기다. 경제위기는 민주주의 붕괴와 함께했다. “사장공모추천제, 사외이사제, 국장임면동의제, 중간평가제 등 공공성을 담보하는 제도들이 2007년 당시에는 잘 지켜졌어요. 그런데 점차 무너졌죠. 사외이사도 들어가지 않고, 국장임면동의제·중간평가제도 미뤄지고 있어요. 지역 시청자들의 염원을 기만한 것이죠.”
2013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재허가 조건인 650점(1000점 만점)을 충족하지 못한 OBS에 대해 조건부로 재허가했다. 지상파를 당장 없앨 순 없으니 일단 허가는 내주고 그동안 회사를 살리라는 뜻이었다. 방통위는 2014년 상반기 50억원 증자, 87억원 현금보유액 유지, 311억원이상 제작비 유지 등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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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OBS본사. 사진=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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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는 오히려 조건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조건을 이행하지 않자 지난 8월 방통위는 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6년 12월 방통위는 OBS를 제외한 지상파 33개에 대해 재허가를 의결했다.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 투자는 없이 비용만 줄이려는 대주주, 답답한 건 언론노동자들이다.
OBS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미래까지 내던졌다. 방통위는 대주주에 재정개선을 요구했고, 대주주인 영안모자는 40% 지분제한에 묶여 증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이에 OBS지부는 대주주에 감자를 요구했다. 대주주가 감자를 실시할 경우 OBS지부는 퇴직금 55억원을 출자전환해서라도 회사의 자본잠식을 막겠다고 결의했다. OBS구성원들이 퇴직금을 반납하면 대주주 지분은 22%로 줄게 된다. 방통위는 이런 결단을 고려해 26일 OBS에 대해 1년 기한으로 재허가했다. OBS 사측은 여전히 입장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주주의 무대응·경영진의 무능
대주주는 왜 이 지경까지 회사를 방치하는 걸까? 유 지부장은 “대주주가 (방통위에) 저항하는 것 같다”며 “광고파이가 정책적으로 묶여있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고 아닌 사업도 해야 하는데 지자체에 광고나 협찬을 받는 식의 전통적인 방법만 생각한다”며 “(대주주는) 방통위가 해결해주지 않으면 ‘난 할게 없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OBS 경영진은 무능하다. 유 지부장은 “대주주가 전환사채를 발행해 긴급자금을 수혈하는 식으로 (OBS의) 토대가 부실하다”며 “대주주(소유자)는 경영자에게 경영을 맡겨야 하는데 사사건건 개입하고, 경영진은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유 지부장은 대주주와 사측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OBS가 먼저 달라져야 방통위에도 다양한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OBS는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이 케이블·위성방송과 IPTV로부터 받고 있는 재송신수수료(CPS)와 수신료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 제작자가 플랫폼 사업자에게 콘텐츠 사용료를 받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도 가치 있는 일이다. 유 지부장은 “CPS는 OBS만 안 받고 있는데 경영진에서 미래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없다”며 “콘텐츠 제공자로 어떻게 시장에 접근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마트미디어렙(SMR, 온라인 모바일 광고대행사)을 통한 콘텐츠 판매 수익을 거두기 위한 노력도 미흡하다.
유 지부장은 “경인지역 인구수가 많으므로 지역 PP들과 연대해 지역 콘텐츠를 지역 플랫폼에 공급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며 “그런데 대주주·회사는 비용절감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공정한 룰, 외면하는 방통위
지역민방의 재정상황이 취약하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광고와 묶는 ‘결합판매’방식으로 광고를 따낸다. 지역민방은 광고를 원래 공영 미디어렙인 코바코(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받았다가 독점체제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해 SBS가 대주주로 있는 민영 미디어렙 ‘미디어크리에이트(SBSMC)’에서 광고를 받게 됐다.
지난해 기준 코바코의 결합판매비율은 12.3%이고, 민영 미디어렙인 미디어크리에이트(SBSMC)는 8.8%다. OBS를 비롯해 지역민방은 코바코 시절보다 광고를 적게 받게 됐다. 유 지부장은 “KNN(부산경남방송)은 가시청권 인구 400만이고 OBS는 1500만이니 (광고비) 세배는 받아야 한다고 보는데 거의 같다”며 “산출방식이 문제인데 iTV 시절에도 광고로 450억원을 받았는데 올해는 200억원 정도로 반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광고시장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 지역민방의 생존은 더 위협받는다. SBS와 지역민방의 광고가 결합돼있어 제로섬게임이다. SBS도 회사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방통위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OBS에게 더 많은 수익을 내줄 유인이 없다. OBS는 100% 자체편성을 해 SBS와 네트워크를 맺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민방은 SBS 콘텐츠를 이용하며 플랫폼 이용에 대한 대가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에 도입된 종합편성채널은 직접 렙을 소유해 광고영업을 한다.
유 지부장은 “코바코는 중소방송사를 위해 결합판매에 충실했는데 미디어크리에이트는 이익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결합판매라는 공적인 부분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OBS가 몸집을 키워 렙을 가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광고정책에 대해 OBS 대주주는 OBS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공정방송을 볼모로 방통위를 압박하는 꼴이다.
이명박 정권 이후 방송은 권력의 도구로 기능했다. 정권은 중앙 지상파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했고, 종편을 출범시켰고, 신생매체라며 광고 특혜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지역민방에 대해 시장논리를 잣대로 배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들이 뛰어들어 공정하게 경쟁할 시장은 애초에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방통위는 이런 정권 아래 있다.
유 지부장은 “종편은 채널을 10번 대에 받아 초창기에 큰 힘이 됐지만 OBS는 경인지역에서도 채널을 받지 못해 통일되지 않았다”며 “종편은 방송발전기금을 지난해까지 내지 않았는데 OBS는 지난해 9000만원 흑자를 내(적자가 지속돼야 면제) 방발기금을 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OBS는 광고매출액의 1%, 종편은 0.5%를 방발기금으로 내게 된다. OBS는 서울지역 이외에 채널을 송출하는 역외재송신을 조건으로 허가받았지만 방통위가 연기해 개국 이후 3년7개월 간 역외재송신을 못하기도 했다.
지역방송을 살리는 언론노동자
망해야 할 회사를 언론노동자들이 살렸다. 양질의 보도는 회사가 언론인을 충분히 지지할때 가능하다. 사측이 임금을 깎겠다고만 나와도 언론인들의 사기는 꺾이기 마련이다. OBS에선 9년째 임금 동결, 2011년을 끝으로 공채 중단, 정리해고, 임금 삭감과 연차수당 반납이 이어졌다. 정부와 사측의 무능은 노동자를 착취하며 유지됐다. 초기 350명이 하던 일을 200여명이 하고 있다. PD 1인당 책임편성시간은 KNN에 비해 2배 가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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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언론은 왜 필요할까? 유 지부장은 “(지역방송이 없으면) 지역민주주의에 문제가 된다”며 “지역방송은 드라마 하나 잘 만들어 강하게 나서는 곳이 아니라 소외된 지역민들의 문제를 다루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송이 많은데 지역민방까지 있어야 되느냐’는 것은 산업논리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500만 경인지역민의 목소리를 담을 언론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서울방송 SBS 역시 ‘서울의 문제를 이야기하는가’라는 질문에 유 지부장은 “SBS 역시 전국뉴스를 하고 있다”며 “지역민방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나 아시안게임과 같이 전 국민의 일이라도 사건 이후 안산과 인천에 대해 관심을 두고 감시할 주체는 지역언론이다.
OBS는 달라지지 않으면 1년 뒤 재허가가 취소된다. “시청자들이 진실을 알고 싶은 그 안에서 중심을 지켜야지 정과 반의 크기를 맞추는 건 의미가 없다. 협찬을 받아야하니까 지자체장의 홍보성 기사가 나오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지역시민단체들도 10년간 많이 실망하고 외면해 버린 건 아닌가싶다.”
OBS지부 집행부들 명함 뒷면에는 “여럿이 함께,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라는 문구가 써있다. iTV 공채 1기로 들어와서 소위 ‘더러운 꼴’ 다 보며 OBS를 지킨 힘 뒤엔 여럿이 함께하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OBS의 1년, 떼면 숨통이 끊기는 인공호흡기가 될지, 새롭게 탄생시킬 인큐베이터가 될지, 그의 지부장 남은 임기 1년에 달렸다.
▲ 전국언론노조 OBS희망조합지부 집행부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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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4206#csidxf230194b4174c698c142e980d2229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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