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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지역소식

육지속의 섬’ 나주 한센인촌 망연자실

‘육지속의 섬’ 나주 한센인촌 망연자실
자활 위해 악취 참고 길러온 돼지 1만마리 불타 수십억 피해

2014년 09월 16일(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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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9시께 나주시 노안면 유곡리 김모(34)씨의 돼지 농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방관들이 진압하고 있다. 〈나주소방서 제공〉
그 마을은 세상과 단절된 듯 했다. 128세대 190명이 살고 6만 마리에 달하는 돼지를 키우는 마을이지만 1950년대 낡은 사진 속 마을과 흡사했다. 초저녁인데도 수십 개에 이르는 돼지 농장으로 가는 길은 변변한 가로등, 이정표가 없어 소방관들조차 길을 찾지 못해 숨박꼭질을 하는가 하면, 차량 한 대가 지나기기에 버거운 도로는 악취로 가득해 숨을 쉬기조차 버겁다. 주민들은 줄기차게 마을 환경 개선을 요구하지만 관련 당국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오랜 세월, 편견과 오해로 마음 한 켠 응어리를 간직한 채 살아온 사람들인 탓에 주민들의 섭섭함은 더하다.

한센인과 후손들의 집단 정착촌으로 불리는 나주시 노안면 유곡리 3구, ‘현애원(현애마을)’ 얘기다. 고립된 육지의 ‘섬’으로까지 불리며 여전히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열악한 시설, 끊이질 않는 화재=마을은 돼지를 키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노후화된 시설과 주변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툭하면 화재가 발생했고 그 때마다 피해가 컸다.

최근 5년새 발생한 화재는 모두 5차례. 돼지 농장에서 난 화재는 그 때마다 농장 전체를 태워 수백 마리에서 많게는 1만 마리에 이르는 돼지들이 죽어나갔다. 지난 14일 밤 9시께 발생한 화재는 28개동 중 20개를 훌러덩 태워 1만 마리의 돼지가 불에 탔다. 나주경찰은 피해액이 4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날 화재로 한센인 3세 김씨의 농장은 전체가 불에 탔고, 아버지 대(代)부터 수십 년간 늘려왔던 돼지 1만여 마리가 전부 죽어버렸다. 현애원에서 돼지 사육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불이었다.

이처럼 화재가 날 때마다 대부분 새끼 돼지의 체온 유지를 위해 설치한 보온등이나 온열 장판에서 비롯된 누전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여기에 마을 환경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작은 불에도 피해는 커졌다.

불이 날 때 마다 소방관들은 일찍 출동했지만 피해를 줄이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수십 개에 이르는 돼지 농장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폭 3m가 될까 싶을 정도로 비좁은데다 미로처럼 엉켜 있어 소방관과 소방차도 신속하게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4일 화재 때도 출동한 소방관들은 마을 입구에서 현장까지 가는 길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한 소방관은 “출동대원들이 둘로 나뉘어 현장을 찾아 갔고 불을 끄고 난 뒤에도 빠져나오는 길을 찾기 힘들었다”면서 “아직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지원도, 싸늘한 시선도 여전=현애원 102개 농가에선 6만 마리에 달하는 돼지를 키워 먹고 산다. 외국에 수출도 하고 군에 납품도 할 정도가 됐다. 지난 1971년 육영수 여사가 준 새끼 돼지 20마리가 그 씨앗이 됐다.

마을 이장 이모(77)씨는 “그전 우리 한센인들은 똥 돼지로 불리는 검정 돼지만 키웠는데 육여사가 품질 좋은 돼지를 가져다준 뒤부터 한센인들은 돼지 사육으로 번 돈으로 자식을 가르치게 됐다”면서 “육 여사님 추모비를 회관 앞에 세우고 해마다 추모제를 여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악취에도 돼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마을 환경 등 시설 개선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한센인이 사는 마을에 대한 무관심을 주된 이유로 지목한다. 여기에 나주시와 광주시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덜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화재가 발생한 김씨 농장의 경우 농장은 나주시 노안면에 속하면서도 출입문을 채 5m 벗어나기도 전에 광주시로 진입하게 된다. 김씨는 “불이 자꾸 나서 불안한 마음에 2차례 이상 행정기관에 가로등을 설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이런저런 이유로 묵살당했다”면서 “그게 무리한 요구인가 싶어 섭섭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