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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지역소식

세월호 두 달 ... 벌써 잊었나

세월호 두 달 ... 벌써 잊었나
[르포] 전남 연안 여객선 타보니
선장은 화투치고 화물·차량은 결박 안돼 흔들 … 해경, 감시조차 안 해

2014년 06월 16일(월) 00:00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을 이틀 앞둔 지난 14일 신안 비금도를 떠나 목포 북항 선착장을 향하던 ‘비금농협 카페리호’ 3층 선원실 안에서 선장(왼쪽 사진 가운데)이 화물차주 등과 뒤섞여 화투를 치고 있다. /목포·신안=김형호기자 khh@kwangju.co.kr
그날의 기억은 벌써 지워지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뒤 각계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잊지 않겠다”는 각오는 60일이 지나면서 벌써 흐릿해졌다. 달라진 것도 없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정부가 긴급 안전 점검을 하고 탑승 절차를 강화한다며 부산을 떨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4월16일 세월호 이전 대한민국과 이후 대한민국이 전혀 다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연안 여객선은 여전히 ‘대충대충’의 부실한 안전 의식을 버리지 않은 채 위험천만한 운항을 하고 있었고 승무원들의 ‘나 하나쯤이야’하는 안일한 근무 행태도 바뀌지 않았다.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할 해경 등 안전 당국의 무책임한 모습도 변한 게 없었다.

◇선장은 선원실서 화투판= 지난 14일 오전 11시께 목포와 신안 비금도를 오가는 연안 여객선 비금농협 카페리호에 올랐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정부가 강조했던 ‘달라졌다’는 연안여객선 안전실태를 확인해보자는 취지에서다.

목포 북항 선착장에서 가족 단위 승객 50여명을 태우고 출발한 여객선(최대 승선인원 184명·307t)은 도착할 때까지 “곧 도착합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한 것 이 전부였다. 비상대피로, 구명조끼 위치, 비상 상황이 발생할 때의 행동 요령 등 필수적 안내방송은 커녕, 구명조끼 착용법 등의 방송조차 없었다.

선원들의 행태도 가관이었다. 여객선이 비금도를 들렀다가 목포로 되돌아오는 순간, 보란 듯 문이 활짝 열린 선원실에서는 선장 등 선원들이 화물차주로 보이는 승선객과 뒤섞여 화투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만원 짜리가 선원실 바닥을 굴러다녔고 일부 선원은 화투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선원실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조타실에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운항 중 여객선을 돌며 불편한 승객이 있는지 살펴보는 승무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목포를 출항했을 때 ‘훌라’를 쳤던 것만 달라진 풍경이었다.

비금도를 자주 찾는 승객은 “선원실에서의 화투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흔하다”면서 “세월호 사고 이후로 선원들 자신들만 피곤하게 됐다는 푸념을 들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출항 전 안전점검’ 강화, ‘말뿐’=여객선 출항 전 해운조합 등 운항관리자는 해경의 협조를 받아 선장 입회하에 출항 전 안전 점검을 하도록 돼있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6월1일부터 연안 여객선 승선절차와 출항 전 안전점검을 항공수준으로 확 바꾼다”고 밝혔지만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여객선의 경우 규정된 화물 무게 이상을 싣지 않았는지와 승선 인원이 적정한지, 화물은 제대로 결속됐는지 등을 점검하는 ‘출항 전 안전 점검’은 아예 무시됐다. 비금도를 출항할 때 현장을 점검해야할 해경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출항 당시 일부나마 고박 장치에 결속돼 있었던 화물차, 승용차 바퀴는 도착하기까지 40∼50분을 남겨놓자 선원들이 돌아다니며 모두 풀어버렸다.

120인실과 64인실 등 2개의 객실에 설치된 미니 자판기와 소화기, 철제 쓰레기통은 변변한 고정 장치도 없었다.

◇탑승 점검 겉핥기, 신분확인 대충대충=정부의 승선권 확인 절차가 강화되면서 목포 북항 선착장을 출항하는 ‘비금농협 카페리호’ 승선 절차도 전산 발권 시스템에 따라 진행됐다. 신분증 확인 절차도 강화돼 매표소에 신분증을 제출한 뒤 승선객 인적사항이 적힌 승선권을 받고 탑승이 이뤄진다. 하지만 배에 타려는 승객과 승용차 등이 몰리면서 혼자서 승선인원을 점검하던 승무원은 일일이 신원을 대조하기는 커녕, 승선표를 받는데만 급급했다.

세월호가 부실한 승선객 확인 절차로 현재까지도 탑승객 현황을 정확히 집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음에도, 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