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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지역소식

씨프린스 악몽 겨우 떨쳐냈는데… 주민들 망연자실

 

씨프린스 악몽 겨우 떨쳐냈는데… 주민들 망연자실
19년만에 또 기름유출 피해 여수 신덕마을 르포
해안가 검은 기름 덮쳐 어패류 수확 물 건너가
“늑장대응 피해 키워” 분통오동도·남해대교까지
확산윤장관·박지사 현장방문

 

2일 여수시 낙포동 인근 신덕마을 해변에서 공무원과 주민들이 이틀 전 낙포각 원유2부두에서 발생한 유출 사고로 해변에 밀려든 기름 찌꺼기를 닦아 내고 있다.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2일 오후 여수시 삼일동 신덕마을에는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민 배홍심(여·60)씨는 “악취에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 병원으로 실려간 아이들과 주민들도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신덕마을에 떨어진 날벼락은 설날인 지난 31일 오전 9시 30분께 싱가포르 선적 16만4169t급 유조선이 여수시 낙포동 낙포각 원유 2부두에 접안하던 중 육상에 설치된 잔교에 부딪쳐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면서 시작됐다. 잔교에는 여수산단 내 석유업체와 연결된 송유관 3개가 있었으며 충돌로 모두 파손돼 관 속에 남아 있던 원유가 그대로 바다에 흘러들었다.

시커먼 기름 덩어리는 4㎞가량 떨어진 신덕 마을 해안가를 덮쳤다. 미역과 파래, 톳을 채취하던 갯가 바위틈과 자갈밭은 검은 기름 물로 가득했다.

한가롭게 설 명절을 즐기던 주민들은 지난 1995년 7월 발생한 씨프린스로 기름 유출 ‘악몽’을 떠올리며 “왜 우리 마을에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당장, 125ha에 달하는 마을 공동 어장의 피해도 현실화되고 있다. 바지락·미역·전복 등 22가지에 이르는 해산물을 길러 수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던 청정 해역을 망친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신덕마을은 또다시 기름 유출 피해를 입게 됐다는 생각에 분통도 터져 나왔다.

마을 청년회 송재석 부회장은 “신덕 앞바다는 풍부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청정 해역으로 손꼽히던 곳”이라며 “이번 사고로 더 이상의 어패류 수확은 불가능해졌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 사고 발생 뒤 즉각적인 방제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늑장 대응해 피해를 키웠다는 불만도 지역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어촌계장 김종기씨는 “피해액을 산정할 수 조차 없다”면서 “지금은 방제에 총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해양경찰, GS칼텍스 업체 직원, 여수시 공무원 등 1000여명은 밀려오는 기름띠를 조금이라도 몰아내야 삶의 터전을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방제 작업에 총력을 쏟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기름띠가 사고 해역으로부터 남쪽으로는 길이 4㎞, 폭 1㎞ 범위에 형성된 것 이외에 사고 지점에서 20㎞ 떨어진 오동도, 경남 남해시의 남해대교 부근에서도 확인됐다는 점 등을 들어 유출된 기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여수해경은 2일 “함정과 어선 방제업체 선박 등 총 200여척을 동원해 방제작업을 벌이는 등 현재까지 바다로 흘러든 기름의 70% 이상을 수거했다”고 전했다.

한편 정홍원 국무총리는 여수 앞바다 원유 유출 사고와 관련, 지난 31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빈틈없는 사고 수습을 지시했다. 정 총리는 이날 윤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해 원유 유출과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재발 방지대책도 강구해달라”고 긴급 지시했다고 총리실이 전했다.

이에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1일 여수 낙포2부두와 신덕해안을 방문, 복구 현황을 점검하고 신덕마을 주민들을 만나 신속한 방제 작업과 피해 조사를 약속했다. 윤 장관은 “큰 선박 사고의 경우에는 보험과 연관이 돼있어 피해와 원인조사가 명백히 이뤄져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박준영 전남지사도 2일 사고지역을 방문해 유류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방제활동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전남도는 1일부터 박 지사를 본부장으로 하는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하고, 기름찌꺼기 제거작업(갯닦기)을 위한 공무원 등 인력지원활동을 3일부터 추진키로 했다.

/박정렬기자 halo@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