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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지역소식

교학사 교재, 기본적인 사실이 틀렸다

“교학사 교재, 기본적인 사실이 틀렸다”
`광주역사교사모임’ 이현걸 회장 인터뷰
표절 심각·고의 누락 등 오점 투성
정상철 dreams@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3-09-13 06:00:00
 

 

▲ `광주역사교사모임’ 이현걸 회장. 그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기본 자질 부족교과서로 평가한다.

“광주선 채택 안될 것…타지역은 걱정”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역사왜곡의 중심에 섰다. 사실 역사는 해석의 문제이니 만큼 여러 입장이 공존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문제는 교학사 교과서가 해석의 수준을 넘어선 왜곡에 고의적 누락, 복사 수준의 표절까지 교과서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는 역사교사들은 논란의 교학사 교과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만났다. ‘광주역사교사모임’ 이현걸(정광중 역사교사) 회장이다.

 특히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한국사가 사회탐구영역에서 분리돼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사실 역사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교사들은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반기지만은 않는 눈치다. 시험이라는 틀이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역사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에 저해가 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 교사들은 아이들과 역사를 논하기보다 시험에 잘 나오는 문제들을 찍어주는 ‘족집개 강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어쩌면 한국사 필수과목 지정은 ‘양날의 칼’이다.

 

“교과서로서 기본적인 자질 부족”

 이현걸 회장이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은 열려 있었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는 무엇보다 균형적 서술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교학사 교과서’ 같은 우편향 교과서가 나오는 것이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한 교과서들이 많이 나오는 게 우리 사회에 훨씬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좌편향 교과서가 나온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역사를 보는 관점이나 시각은 누구나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해석을 낳게 하는 사실적 기록이 왜곡됐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교학사 교과서를 대표 집필한 공주대 이명희 교수는 기본적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산업화의 유입 통로 측면에서 바라본다. 일제 강점기를 부정적 측면에서만 볼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역사 해석은 공감하긴 어렵지만 인정할 수는 있다. 문제는 자기주장을 위해 기본적인 사실을 틀리게 기록한 것이다.”

 그가 보건대 교학사 교과서는 `팩트’ 자체가 잘못된 게 너무 많다. 예컨대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의도적으로 왜곡·누락시키거나 반민특위에 반발한 경찰들이 친일파 출신이란 사실도 기록하지 않았다. 때문에 광주역사교사모임 회원들은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기준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가 일어났다.

 “교학사 교과서는 상식 이하다. 팩트가 왜곡된 곳이 셀 수 없이 많고, 여기저기서 오타까지 복사해서 붙여 넣은 곳도 적지 않다. 심각한 표절이고, 교과서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부족하다. 이런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면 학생들은 왜곡된 역사를 배우게 되고,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특히 그는 사실 왜곡은 아니지만 `고의적 누락’도 큰 문제로 봤다. 교학사 교과서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혁명6대공약’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 오히려 쿠데타의 당위성을 부각시켜 주고 있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는 두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또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해 “평화통일을 명분으로 추진하였지만 언제나 선언에 그치고 말았다”고 평가 절하한다. 5·18민중항쟁에 대한 서술에서도 계엄군의 발포와 학살 만행이 누락돼 있다.

 그는 검정 체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사 교과서는 8종이다. 만약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가 이런 정도 오류가 있었다면 절대로 검정을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 교과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 생각에 광주에서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근데 다른 지역은 어떨까? 충분히 선택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걱정인데, 방법은 하나다.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을 취소하는 것이다. 설사 나오더라도 최소한 교과서 형태는 갖춰야 한다.”

 

 “필수 지정보다 수업·평가방식 개선이 먼저”

 2017학년도부터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것에 대해 `광주역사교사모임’ 교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교사들 사이에도 의견이 아주 분분했다.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기 때문. 일단 현재의 수업시수로는 한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는 `5단위 혹은 6단위’가 적용된다. 그러나 국·영·수에 밀려 4단위만 배우는 학교도 적지 않다. 그마저도 한 학기에 몰아서 배운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 일주일에 4시간씩 한국사를 배우고, 다시는 한국사를 배울 수 없는 학교가 태반이다. 특히 고조선부터 근현대사까지를 일주일에 4시간 수업시수로 한 학기에 다 가르친다는 게 불가능하다. 가르치다 보면 고대를 건너뛰거나 근현대사를 건너뛰는 경우가 흔하다. 수능 필수과목보다 먼저 수업시수 확보가 중요하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흐름과 해석이 중요한데, 이 땅의 역사수업은 학생들이 흐름을 이해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저 중요한 사건을 연대순으로 외우기를 강요하고, 학생들은 역사를 외면한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넉넉한 배움의 시간이다.

 “교사가 수업하기 나름이지만 최소한 한국사가 8단위는 되어야 학생들이 역사를 제 나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의 수업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한 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는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 1학년 때 4시간, 2학년 때 4시간씩 나눠서 최소 2년은 한국사를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광주역사교사모임’ 회원들이 갖는 무엇보다 큰 고민은 시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다.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수능시험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관된 답 하나를 강요하고, 그것이 암기식 교육으로 이어진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선택의 몫이다. 하나의 사건을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수많은 추론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 해석은 달라진다.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할 뿐 사실 역사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수능은 어떤가? “서술형 평가가 아니라 객관식이다. 정답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럼 교사들은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수업도 암기 위주로 진행되고, 교사는 시험에 잘 나오는 문제들을 찍어주는 `족집개 강사’가 될 수밖에 없다. 수능 필수과목 지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업방식과 평가방식을 개선하는 게 먼저다.”

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수능 필수보다 중요한 게 평가방식 개선이라는 이현걸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