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오는 3월1일부터 살아있는 랍스터(바닷가재)를 끓는 물에 넣는 사람에게 벌금형을 내린다.
스위스 정부는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가디언 등 외신이 보도했다. 조리 전에는 반드시 기절시켜야 하며, 그마저도 전기충격 등 제한적인 방법만 허용한다. 랍스터를 얼음 위에 올려 수송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러한 법안이 통과된 배경에는 ‘랍스터도 고등 신경계를 가지고 있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스위스의 이같은 조치는 동물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랍스터와 같은 갑각류도 고통을 느낄까. 그 고통은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다른 종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을까.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이를 법률로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무척추동물로 갑각류로 분류되는 랍스터. 게티이미지코리아.
■랍스터·오징어도 고통 느낄까
일반적으로 무척추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다. 2005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생물학 연구팀이 “갑각류는 중추신경계나 뇌가 거의 발달하지 않아 고통을 느낄 능력이 없다”고 한 연구는 수십 년 넘게 회자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갑각류를 비롯한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내용의 연구들도 늘어나고 있다.
동물행동학자 로버트 엘우드는 2013년 영국 벨파스트 퀸스대학교 연구팀과 진행한 연구에서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이 새우의 더듬이에 아세트산을 바르자, 새우가 앞발로 상처 부위를 어루만지는 행동을 보였다. 미리 마취제를 바른 경우 어루만지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다치자마자 어색한 자세로 굳어버리기도 했다.
소라게를 대상으로도 실험을 진행했다. 두 동굴을 주고 한쪽 동굴에 들어갔을 때 전기충격을 가했더니, 다음 차례에서는 다른 동굴로 옮기는 경향성을 보였다. 일종의 고통 학습이다. 소라게는 서식지로 주어진 조개껍질이 눈에 띄게 아늑할 경우 강도가 센 전기충격을 견디기도 했다. 인간이 치아 건강을 위해 치과 치료의 고통을 참아내듯이, 소라게도 고통과 효용을 비교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강릉의 한 수산물 음식점에서 여성이 문어를 손질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오징어나 갑오징어같은 연체동물도 연구의 대상이다. 미국의 로빈 크록 교수는 텍사스대 환경과학센터와 진행한 연구에서 “갑오징어와 문어도 상처를 어루만지거나 보호하려는 회피 행동을 보이며, 이는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갑오징어와 문어는 친절한 사육사에게 묘기를 부리고, 불친절한 사육사에게 먹물을 뿌리고 도망갈 정도로 똑똑하다고 알려져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식물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식물연보’의 한 연구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통을 피하려 세포막에 마취 물질을 뿜어 생체 신호를 꺼뜨렸다가, 약효가 사라지면 회생한다는 내용이다. 통증을 느끼면 신경세포 간 전기신호를 보내는 인간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반응을 ‘고통’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모기나 파리도 인간의 습격을 당하면 다리를 떨곤 하지만, 이를 고통에 몸부림치는 ‘의식적 행동’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연구진에 따라 고통을 정의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뇌구조나 신경점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통각이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상처를 어루만지는 적극적 회피행동은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로 봐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포탕은 ‘비윤리적’인 음식?
정말 랍스터나 오징어도 고통을 느낄까.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많은 행동들은 ‘끔찍한 일’이 된다. 문어나 갑오징어를 팔팔 끓인 물에 데치거나, 뜨거운 간장으로 게장을 담근다. 랍스터끼리 서로 상처를 입힌다고 아예 집게 다리를 잘라버리기도 한다.
미국 인터넷매체 쿼츠에 따르면, 2012년 인지과학자, 신경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의식에 관한 캠브리지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대뇌 신피질(고통을 인식하는 중추신경계)이 없다고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적혀있었다. 인간만 의식을 느끼는 신경 기질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다른 종들보다 더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약한 종을 학대하는 것이 옳냐는 윤리적 반성으로 이어진다. 모피를 만들겠다며 너구리를 죽이고, 소를 더 크고 기름지게 만들겠다며 공장형 축사에 기르는 행위가 비판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당장 어떤 동물의 고통을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문제가 된다. 랍스터를 산 채로 찌는 행위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중단해야 한다면, 랍스터를 죽이는 행위 자체도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해야 한다. 모기를 죽이는 것과 랍스터를 죽이는 것, 강아지를 죽이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연포탕.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안은 없을까. ‘살아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고통 최소화하는’ 노력은 기울일 수 있다. 일부는 이미 실천에 나섰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비지니스인사이더 보도를 보면, 미국 메인주에서는 높은 수압을 사용해 바닷가재를 6초만에 죽이는 조리도구가 개발됐다. 유럽에서는 ‘랍스터를 고통없이 죽이는 법’이라며 두 눈 사이를 뾰족한 나이프로 찌르거나, 차가운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올리는 방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이 역시 인간의 관점이다. 바닷가재에게 물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일이다.
■독일에서는 ‘물고기 학대’도 불법
일부 국가에서는 윤리적 반성을 넘어 법 개정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대법원은 ‘산 바닷가재를 요리 전에 얼음과 함께 놔두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요리 과정에서 바닷가재를 산 채로 삶는 행위는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요리 전 보관 상태에서 살아있는 바닷가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봤다. 이 판결로 바닷가재의 집게를 끈으로 고정해 얼음 위에 보관해왔떤 피렌체 인근의 한 식당은 약 25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독일의 동물보호법은 물고기도 감각이 있는 척추동물로 간주한다. 침팬지나 개, 고양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물고기를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물고기를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는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이 법은 2013년 개정 당시 어부들과 어류 연구자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렀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규정한다. 파충류, 양서류, 어류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관계 기관장과의 협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인정한다. 문어(두족류)나 랍스타(갑각류) 등은 적용 대상에서 빠져있다. 한국의 동물권 논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만큼, 법의 보호를 받는 동물은 더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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