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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체육관에 나붙은 ‘눈물의 대자보’

이피디 2014. 4. 23. 05:53
진도 체육관에 나붙은 ‘눈물의 대자보’
‘어쩔수 없는’ 어른 되지 않겠다
1년 계약직 선장에 수백명 목숨 맡긴 사회
책임 다한 사람만 피해 결국 이기적인 사람만 살아 남아

2014년 04월 23일(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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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이 22일 진도 체육관 정문 앞에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고, 실종자들이 하루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대자보를 붙였다.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동생아. 추운 바다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을 지 상상이 안간다.”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

22일 오후 진도군 실내체육관 앞 손글씨로 눌러쓴 대자보들이 나붙었다. 실종자 가족 등이 붙인 대자보로,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비롯, 세월호 침몰 사건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함, 책임 떠넘기기, 우왕좌왕하는 대처 능력에 대한 비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실종된 동생을 기다리며 언니가 쓴 대자보에는 “조금 더 나이 많은 이 언니는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너를 하루 빨리 바다 밑에서 구하려고 높으신 분들께 소리 높여 항의하고 울기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라며 소시민의 울분과 안타까움을 썼다.

언니는 “우리 동생, 어두운 것 싫어하고 좁은 것, 답답한 것 싫어하는데…”라며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 지 생각만해도 답답하다”면서 동생에 대한 간절함을 드러냈다.

다른 대자보에는 200명 넘는 가족들이 여객선과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눈 뜨고 지켜만 보고 있었던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재난사고’ 어쩔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무능해서’ 어쩔 수 없었다. ‘지위가 높으신 분’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 어쩔 수 없었다로 이어졌다.

‘세월호는 소시민의 거울상이다. 책임을 다한 사람들은 피해를 보고 결국에 이기적인 것들은 살아남았다’고 써 기성세대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이들은 “나는 이 나라에서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첫번째 대자보의 마지막에 던졌다.

다음 장에는 ‘책임을 묻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언급하며 “몇백 명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직업에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사회를 만든 우리가, 1년 계약직 선장에게 책임에 대해 묻는 것은 책임 전가는 아닌지”라며 의문을 제시했다.

마지막 장에선 “내가 참담한 ‘세월’을 몇십년 더 보내려니 착잡한 마음이 끝까지 올라온다. 더 이상의 인명피해 없이 무사귀환 간절히 바랍니다’고 썼다.

이 자원봉사자는 “지금은 책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단 구조부터 해야 한다"며 울음을 터뜨린 뒤 팽목항에도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겠다며 친구인 실종자 누나와 함께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