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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도 접은 진도…말만 건네도 눈물 주르르 "살맛 안난다"

이피디 2014. 4. 23. 05:50

생업도 접은 진도…말만 건네도 눈물 주르르 "살맛 안난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발생 엿새째인 21일 전남 진도 팽목항이 중계차량과 구급차량, 봉사단체들의 부스 등으로 붐비고 있다.2014.4.21/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세월호 침몰] [르포] 진도 군민 "남일 같지 않아" 한숨...일도 손에 안잡혀

침몰 7일, 슬픔에 잠긴 주민들…"애기들 불쌍해서 어째, 내가 이리 슬픈데 가족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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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뉴스1) 권혜정 기자 ,성도현 기자 = 세월호 침몰 사고 일주일째를 맞은 22일, 진도의 시간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에 멈춰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 붙잡고 "노래 한 곡 해보라"며 장난을 할 정도로 정겹던 진도 사람들에게서 웃음이 사라졌다. 인구 3만 여명의 작은 섬마을 진도의 올해 봄은 유난히도 섧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휴가철보다 많은 이들이 진도를 찾고 있지만 대부분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자원봉사자와 취재진들이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숙박업소는 '만실'이 됐고 몇몇 음식점은 앉을 자리가 없지만 곳곳에서 안타까움 섞인 한숨과 눈물이 터져나오고 있다.

'아름답던 내 고향'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참사에 진도 사람들은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했다. 일이 손에 안잡히는 듯 진도 읍내 곳곳에 위치한 가게들은 '외출 중'이라는 문패를 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으로 향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총동창회 연기', '빠른 구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고 곳곳에 보이는 유흥업소들도 슬픔에 빠진 분위기에 숙연해져 영업을 자제하고 있다.

사고 일주일째인 이날은 오랜만에 진도에 5일장이 선 날이었다. 그러나 장을 찾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볼 수 있던 몇몇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진도에서 나고 자라 한복집을 하는 차복심(62) 할머니는 "살맛이 안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가게 문을 닫고 달려가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기적을 기도하고 있었다. "한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그는 "내가 이렇게 슬픈데 가족들은 오죽할까…정(情)이 넘치던 진도에 슬픔만이 가득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 발생 후 한복집을 찾는 손님이 부쩍 줄었다는 그는 "장사가 안돼도 괜찮다"며 "진도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영업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한 약국 앞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기사가 담긴 신문 1면을 펴 놓고 있던 택시운전기사 김모(59)씨 역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식을 둔 부모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다"고 했다. 김씨는 "실종자 가족들이 택시에 탑승할 경우 차마 택시비를 받을 수 없더라"며 "이에 진도 택시운전기사 대부분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택시비를 받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기사로 뒤덮힌 신문을 만지작 거리던 그는 "뉴스를 안 보자니 답답하고 보자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자리를 일어나는 취재진에게 "제발 잘 좀 써줘"라고 연신 부탁했다.

'외출 중'이라는 문패를 달고 진도실내체육관에 봉사를 다녀온 옷가게 주인 A씨는 "우리는 여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최대한 줄 수 있는 도움을 모두 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침 저녁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이 고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게 뭐가 힘들겠어"라며 "실종자 가족들 생각해봐,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발생 엿새째인 21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희생자들의 시신을 태운 해경 경비정이 들어서고 있다.이날 상당수 실종자들이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 세월호 3~4층에서 시신이 다수 발견됐다. 2014.4.21/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그는 사고 이후 진도에는 "웃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전 진도사람들은 지나가는 이들을 붙들어 '노래 안 부르면 못간다'며 장난을 피울 정도로 밝고 정겨웠다"면서 "이젠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진도 읍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서명화(44·여)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눈물을 흘렸다.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진도 사람들 모두가 나 같은 마음"이라며 "비통함에 유흥업소를 찾는 이들의 발길도 끊겼다"고 전했다.

서씨는 "이런 안타까운 사고로 진도가 알려지게 돼 좋지만은 않다"며 "'진도'를 떠올리면 푸른바다와 맑은 공기 등이 생각나야 하는데 수백명이 바다에서 스러져간 곳이라고 생각될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진도 읍내에서 차를 타고 30여 분 달리면 나오는 팽목항은 바다에서 인양되는 시신이 거쳐가는 곳이라 그 비통한 분위기는 살을 에는 듯하다. 푸른 바다와 빼어난 산 등 훌륭한 경관을 자랑하던 팽목항에서는 이번 사고로 통곡이 이어지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의 오열에 파도 소리는 묻혔고 기분 좋게 불던 바람은 매섭기까지 하다.

팽나무가 많아 '팽목마을'로 이름 지어진 이 마을에는 약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대부분의 집에 대문이 없을 정도로 인심좋고 넉넉한 마을이다.

팽목마을에서 40여 년을 살았다는 김월매(71) 할머니는 "애기들 불쌍해서 어쩌냐"며 "전쟁이라도 난 것 같다…아니 이게 전쟁이지"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사고가 난 뒤 생업인 농사마저 접었다는 할머니는 "애기들, 불쌍한 애기들 산 채로 데려오진 못해도 최소한 시신이라도 찾아야 할텐데"라며 먼 발치에 있는 바다를 바라봤다.

팽목항 바로 앞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완율(62)씨는 "왜, 바다를 보면 마음이 넓어진다고 하잖아. 그래서 이 마을에는 악한 사람이 없다"고 입을 열었다.

농사도 짓는다는 그는 "요즘 농번기라 고추를 심어야 하는데 일을 전혀 못하고 있다"며 "저 사람들 이렇게 고생하는데, 애들 찾는 부모 마음 어쩌라고 우리가 일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이씨는 "일하는 자체가 미안하다"며 "지금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직접 물고기를 잡아 팽목항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가욱(63)씨도 "사고 이후 손님이 전혀 없지만 지금 장사를 하고 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차가운 바다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그는 "우리 마을 사람은 모두가 한 가족이다. 지금 이 가족 모두가 슬퍼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마을에서 요즘 나오는 이야기라곤 사고와 관련된 것뿐"이라며 "서로 멍하니 아무 말 안하고 앉아있기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평생 여기서 살아온 사람들인데 안 좋은 사고로 고향이 알려져 '속이 쓰리다'"며 "하루 빨리 마무리 돼야 한텐데…"라고 말하곤 자리를 떠났다.

수학여행을 간다던 아이들이 바다속 차가운 주검으로 변해 가슴을 짓누르는 이 봄에 진도에도, 팽목항에도 언제 그칠지 모르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다.